시인의 문화기행 1화
프롤로그
옛 산하의 고분과 유적을 찾아 걷는다
돌과 별, 바람과 흙이 전해주는 천년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쓴다
가야에서 신라 백제까지, 묻힌 봉분과 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답사기다
1화
아득한 옛날, 이 땅에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불꽃처럼 사라진 아름다운 제국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함안 읍을 중심으로 웅지를 틀었던 아라가야 이야기다. '아라가야'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대 제국이 있었던가. 아리랑의 숨결처럼 낯설지 않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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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백 년 시공을 넘어 아라가야를 찾아가는 산하는 푸르름이 짙은 소서(小暑)의 계절. 노포동 금정톨게이트에서 새로 난 기장-진영 간 고속도를 타고 진영휴게소에서 잠깐 쉬어가도 2시간 남짓한 거리였다. 전설 속 불의 제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하게 함안박물관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차를 세우고 유물전시관을 찾아가는데 주위가 왠지 한산하고 조용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박물관 출입문에 '내부 수리 중'이란 흰 안내문이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휴관 기를 이용해 내부를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6~7년 전에 왔을 때도 월요 휴관이라 전시관은 구경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전시관 유물들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쉽다.
▶ 바람과 별이 스친 들녘
박물관 뒤편 구릉지대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사적 제515호 말이산(末伊山) 고분군'이다. 거대한 봉토분들이 줄을 지어 마치 작은 동산처럼 솟아있다. 경사가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올랐다. 고분들은 그 큰 덩치에 비해 1호분, 2호분 등으로 관리 번호를 새겨놓은 2자 남짓한 돌비석 하나씩을 앞세우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치택인지 사자는 말이 없다.
왜 가야인들은 그들의 주검을 산 정상에다 안치했을까. 부부총이 있는 양산 북정동 고분군과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그렇듯 이곳 아라가야의 고분도 마찬가지다. 지배자는 죽어서도 세상을 굽어보는 위치에서 통치와 존
엄을 지키려 했던 것인가.
사적 제515호 말이산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무덤 사이를 돌아 능선 정상에 올라섰다.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였다. 낙남(洛南) 정맥이 남으로 남으로 힘차게 뻗어오다 함안평야 곳곳 들판에다 거름 무더기처럼 뿌려놓은 구릉들, 구릉과 구릉 사이 펼쳐진 넓은 분지가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로는 남강이 낙동강과 몸을 섞기 위해 실뱀처럼 기어가고 있다.
함안평야는 오랜 세월 거듭된 강물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지, 가야 시대 사람들도 이 기름진 영토에서 번성을 노래했으리.
능선과 별의 숨
봉분마다 바람이
잃어버린 별의 문을 열어젖힌다
낙남의 구릉들은
철 냄새의 낮은 숨을 푸른 그늘에 묻고
불꽃무늬 접시는
홍련처럼 빛의 흔적을 안고 눕는다
밤이 산의 어깨를 더듬을 때
성혈의 별들이
먼 옛 하늘의 길을 다시 수놓는다
▶ 별의 왕릉, 말이산의 장엄
말이산 고분군은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낙타 등처럼 낮게 걸쳐져 있다. 고분 분포면적 77만 8천여㎡, 가야 시대 고분 유적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봉토분은 모두 37기가 관리되고 있으나 91년 지표조사에서 76기가 더 확인되었다. 이 고분들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의 것으로 집중 조영되었다. 삼한시대 목관묘와 4~5세기 전반의 목곽묘가 밀집해 있어 봉분이 주저앉아 소멸한 것까지 합치면 수천 기가 분포된 것으로 추정한다.
말이산(末伊山)이란 이름은 머리 산의 소리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산이란 의미다. 해발 40~70m의 낮은 구릉으로 남북 2km의 주 능선과 여덟 갈래의 가지 능선이 있다. 가야 분지 상의 탁월한 입지로 선사시대부터 인간 생활의 무대로 적합한 안전지대였음을 짐작케 한다. 아라가야 고분들은 이 능선들을 따라 3~4기씩 무리를 이루며 형성돼 있다.
430년 전의 함안지방 문헌인 ≪함주지 고적조(咸州志 古蹟條)≫에서는 '우곡리 동서 쪽에 고총이 있다. 높이와 크기가 언덕만 한 것이 40여 기인데 세상에 전하기를 옛 나라의 왕릉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예부터 민간에도 구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서 깊은 말이산 고분군은 이곳까지 미친 일제 문화침략으로 유적의 훼손을 가중시켰다. 거기다 일제강점기의 도로와 철도부설, 60~70년대의 급격한 도시화 등 개발로 인해 상당 부분 멸실, 훼손됐다.
아라, 흙이 기억하는 말
이름 없는 돌비석이
제국의 어제를 세운다
봉토 아래, 철의 숨결 식지 않았다
검은 토기 옆에 시간이 눕고
도굴의 그림자도, 보고의 문장도
끝내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함안의 평야가 숨 들이쉬면
아라가야는 별빛으로 대답한다
함안박물관 전경 (철의 왕국을 상징하는 불꽃무늬와 용광로 모형물)
▶제국의 왕들은 임나일본부설을 부인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반도 침략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곳에서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의 단서를 찾고자 했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 일 강제 병합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1천5백 년 침묵을 지켜 온 가야 고분의 수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일본 도쿄제국대학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교수는 1909년 대한제국 통감부의 의뢰를 받아 1914년까지 조선 전역의 고건축물을 비롯한 주요 고적과 유물을 조사했다. 당시 한반도 남부 지역의 가야권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졌는데 이때 함안의 말이산고분군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1910년 세키노 타다시를 시작으로 1914년 도리이, 1915년 쿠로이타에 의해 차례로 고적 조사가 이어졌고 1916년 총독부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조사위원인 이마니시(今西龍)와 야츠이 세이이츠(谷井濟一)에 의해 고분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현재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유리 원판 사진 등으로 볼 때 당시 모두 5기의 고분이 발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17년 발굴된 4호분 1기에 대해서만 정식 보고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이마니시 주도로 발굴된 4호분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말이산 고분군에 대한 최초의 공식 발굴이었다. 봉토의 지름이 39.4m, 높이 9.7m로 말이산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이었다. 그러나 봉토 굴착, 내부 조사, 유물 수습, 실측, 복구까지 이 모든 작업을 불과 13일 만에 끝냄으로써 오늘날까지도 고분 구조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4호분 발굴 다음 해인 1918년, 다른 2개의 대형분 발굴을 주도한 야츠이는 총독부 기관지 조선휘보에 '10월 14일 측량원 3명과 경성을 출발하여……. 12월 3일 함안군으로 들어가 10일까지 체재하면서 가야면 가야 성지와 고분군을 조사하였는데, 도항리 고분을 발굴하여 토기, 대도(大刀)를 발견하였다.'라는 단 세 줄의 짧은 소감문을 실었다.
일본학자들은 고분을 조사하면서 조선인들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그들이 주장한 '조선총독부의 영원히 기억될 문화사업'이라는 자화자찬을 떠벌렸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야문화 유린 사업의 자행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이때까지 경외의 대상이었던 왕릉 내부에 희귀하고 화려한 부장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민간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약삭빠른 일본인 골동품상들이 닥치는 대로 유물을 사들이게 되자 도굴과 난굴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가야시대 고분들은 대부분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아라가야의 찬란했던 문화
우리 학자들에 의한 정식 발굴 조사는 80년대 후반부터로 비교적 늦은 시기에 시작됐다.
1986년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이 처음으로 발굴 작업을 시작한 데 이어 2009년 말까지 6개 기관이 참여해 17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무덤과 생활, 생산 유구를 비롯해 삼한시대 목관묘 51기, 가야 시대 목곽묘 86기 등 총 1백98기의 대형 봉토분 등 고분이 발견되어 아라가야의 고분 문화 전반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모두 7천9백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아라가야가 고대 한반도 남부의 한 제국으로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점과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주변국들과의 교류, 갈등, 정복 등의 관계가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4~5세기의 불꽃무늬 굽다리접시, 수레바퀴모양토기 등은 아라가야 양식의 대표적 토기로 꼽히고 있다. 특히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 문양 토기는 다른 가야 지역이나 신라, 일본 등 분포도가 넓은 여러 지역의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어 아라가야의 대외관계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철의 왕국답게 환두대도, 투구와 갑옷, 마갑 등 수준 높은 철기 유물이 대량 출토 됐다.
근년 발굴 조사가 이뤄진 최고 지배자의 능으로 추정되는 13분에서는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궁수자리, 전갈자리등 성혈(星穴)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