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미국 여행을 끝내고, 지난 토요일 집으로 돌아왔다. 캐리어에 잔뜩 담아온 빨래감을 처리하고, 자질구레한 짐들을 정리하며 주말을 보냈다. 무려 16시간이나 차이나는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 낮 2시면 꾸루룩 꾸루룩 잠들려하는 아이를 붙잡고 열정적으로 놀아주면서.
그리고 맞이하는 월요일.
남편은 다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고
아이도 쓰기 수업이 싫다며 징징거리다 이내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등원 차량에 오른 아침.
나는 혼자 집에 남아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가 감내해야하는 일상의 무게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휴직이지만 이런 날에는 어김없이 스쳐지나가는 위축감을 피할 길이 없다.
각자 자기 몫의 일을 해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어떤 시절에는 나의 몫이 훨씬 더 무겁기도, 다른 어떤 시절에는 상대의 몫이 훨씬 더 무겁기도 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본다. 그 동안 내 몫을 성실히 잘 해왔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편안함도 허락해주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 다정히 대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것을 떠올리며.
어쨌거나 마음 속에 있는 불편한 미안함을 덜어보고자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있어야 할 곳에 모든 물건들을 정리해서 두었고, 청소기도, 빨래도, 아침 설거지도 마무리한 후 노트북 앞에 앉았다.
땀이 뻘뻘 났다.
다시 장마가 찾아왔는지 공기가 물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 숨쉬기도 버겁다.
아픈 지구를 위해, 그리고 가정 경제를 위해
'혼자 있을 때는 에어콘 켜지 않기'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원칙을 무시하고 에어콘을 켰다.
후덥지근하던 공기가 순식간에 산뜻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간을 나는 꽤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내내 넘쳐나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고
여행하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황홀함, 벅참, 사랑, 좌절감, 위축감. 그 많은 마음들을 생기게 했던 여행지에서의 순간들이 휘발되기 전에 폴더에 차곡차곡 정리하듯 반듯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혼자'라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글을 쓸 마음이 준비되는 탓에 이제야, 그리고 드디어 무작위로 떠오르던 마음들을 정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동영상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며 여행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왔다. 며칠이나 됐다고 그새 사라져버린 기억들이 동영상과 사진 속에 담겨있다.
미소 지으며 보다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려니 막막한 마음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