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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미 Sep 01. 2022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삼십분 째 같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며 걸었다. 배까지 사르르 아파왔고 숨이 턱턱 막혔다. 어린이집 창문 너머로는 아이의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우는 애를 어린이집에 왜 보내겠다고 했을까. 난 정말 최악이야. 엄마 자격도 없어. 내가 무슨 엄마라고 애를 키운다는거야.     


끝없는 자책과 자기비하가 덮쳐왔다. 나 좋자고 우는 아이를 덜컥 기관에 맡겨버린 나는 이기적이고 형편없는 엄마였다. 2년 가까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부족한 엄마였다.



 

 안정애착을 위해서는 36개월 간 주양육자의 안정적인 돌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서둘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을까. 육아서의 권장대로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제 아이 울음이 그쳤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두 시간 정도 푹 쉬다 아이를 데리러 오라는 선생님의 연락에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도 소원하던 혼자만의 시간. 편안히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상상했지만 구부정하게 움츠러든 몸에서 여유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만 넘실거렸다.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시킨 블루베리머핀을 앞에 두고 턱을 괸 채 머핀에 박혀있는 블루베리들을 습관처럼 빼내다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기새처럼 블루베리를 잘 받아먹던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혼자 여유를 즐겨보겠다고 앉아있는 내가 미웠다.      






 ‘어린이집 적응’을 키워드로 검색하다 보니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의 글이 주르륵 쏟아졌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는데 계속 보내도 될까요?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나니 너무 괴로워요.

 어린이집 보냈다가 아이가 울어서 다시 보내지 않기로 하신 분 계신가요?

 아직 아이가 어린데 어린이집에 맡겼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저처럼 아이를 막 키우는 엄마는 없을 거예요.     



글을 읽고 있자니 안쓰러움, 애틋함, 동지애가 솟아났다. 엄마들은 왜 자기의 많은 것을 쏟아 붓고도 여전히 부족하다 느끼며 죄책감에 시달릴까? 세상이 엄마들에게 요구하는 좋은 엄마의 조건을 다 충족시키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가 과연 있을까?     





 다 잘하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이고 싶고, 나의 안위도 지키고 싶었다.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구닥다리 모성의 소유자인 동시에 자유를 향한 갈망을 품고 사는 영혼.


 하지만 오래된 모성은 자유를 꿈꾸는 영혼에게 호통쳤다.  그러자 나를 향하는 스위치 하나가 툭 꺼져버렸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안위 쯤은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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