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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미 Sep 01. 2022

연애와 독서가 알려준 단순한 진실

 내게는 혈연관계나 다름없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다. 그녀는 아름답고 유쾌하고 투명하다. 밝은 에너지와 통통 튀는 솔직함은 그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녀에게는 고민이 있다. 결혼할 짝을 찾지 못했다는 것.


 “왜 나만 남자를 못 만나고 있지? 네가 보기에 나한테 뭐 문제 있어?”     


 그럴리가. 매력이 있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는데 문제라니. 아직 결혼할 짝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나에게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는 것이 속상했다. 잘 맞는 상대를 찾지 못했을 뿐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남자면 너랑 결혼한다! 그러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봐. 그러다 보면 짝이 나타났을 때 알아볼 수 있는 눈도 생길거야.”     


  딱 들어맞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가진 남자를 찾고 싶다면 수고롭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것. 연애시장에서 물러선지 오래라 어설프지만 단순한 진실을 건넸다.     




 경험이 쌓일수록 안목이 생긴다는 단순한 진실. 내게는 책이 그랬다.


한두 권 읽다가 졸리고 재미없어서 덮어버리며 ‘나는 독서랑 잘 맞지 않나봐.’라고 단정 지었다. 책이 가진 분위기는 사랑했지만 책을 술술 읽는 독서가는 아닌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엄마가 된 후 다른 취미를 가질 수 없어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하게 된 책. 그야말로 대중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렸다. 추천 받은 책, 베스트셀러,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골라온 책, TV에 나온 책 등.

 그러다가 막연히 떠도는 마음을 활자로 표현해 둔 책을 만나면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책을 찾을 때마다 흠뻑 몰입했다. 


독서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책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서사를 읽으면 어두운 방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환해졌다. 살면서 막연하게 느끼던 여자으로서의 감각이 책을 만나자 활짝 피어났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말하고, 연대하고, 헤쳐 나가는 글을 읽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짜릿했다.      


 스쳐 갔던 책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던 것은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내면과 닿아있는 이야기를 만나자 그때부터는 메마른 땅에 물이 콸콸 쏟아지듯 책들이 다가왔다. 쏟아지는 책들을 듬뿍 흡수하며 척박했던 내 독서 세계는 푸르고 무성해졌다.      


 나폴리를 읽고 여성의 일생을 훑었고, 캐롤라인 냅에게 열광했으며, 레베카 솔닛의 날카로운 예민함에 빠져들었다. 작은 사유의 세계에 문을 두드리고 넓혀주고 전복시켜준 작가들.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문장들.

 그렇게 깊어진 독서 세계는 여성 연대 뿐만 아니라 더 멀고도 넓은 세계로 확장되어갔다.    



  

 남들이 인생책이라고 하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수면제가 될 수도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과 잘 맞는 사람이 없듯 모든 사람에게 잘 읽히는 책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책, 인구의 사분의 일이 선택하는 영화라는 게 얼마나 자기모순적인가.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경제의 법칙이다. 문화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감정의 세분화, 다름의 향유다. 모든 감정의 평준화를 양산하는 건 결코 좋은 문화가 아니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책도 결국 사람이 쓴 것이고, 작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기에, 책을 향유하는 시간 속에는  개별적 서사를 가진 고유한 내가 있어야 한다. ‘고유한 나’와 결이 맞는 책을 찾아 거닐다 보면 언젠가는 들릴 것이다. 오래 기다렸다고, 이제 우리 마음껏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자고 말을 걸어오는 문장의 소리가. 나를 닮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독서와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직 잘 맞는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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