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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y 16. 2023

24번째 생일

1

작년 11월 15일이었다. 전날 밤샘과제를 하고 거의 온종일 누워있었다. 겪어본 가장 슬픈 생일이었다.


이틀 전, 나는 할머니의 위암소식을 들었다. 바로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나에게 할머니 집이 따뜻했던 마지막 날이었다. 할머니가 36.5도라는 체온으로 나를 끌어 안아준 마지막 순간.

생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날이었다.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것도 온종일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이렇게 썼다.

생일에 부여하던 의미를 덜어내게 될 것 같다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기에 슬픈 일이었다. 그 다음 나는 또 이렇게 썼다.



사실은 요즘 조금 힘들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누가 그러라고 그러더라.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생각들이 속상했던 기억, 미안한 사람이나 미웠던 사람들을 같이 떠오르게 하는 건 필연일까. 그 두 가지가 다 이세계의, 내 삶의 진실이라는 증거다. 떠 안으려 한다. 때론 판단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배워간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아니다. 내가 웃었던 일, 조금 속이 상했던 일일 뿐이다. 전자가 나쁠 수도 있고 후자가 좋을 수도 있다. 이르게 판단하는 것은 간편한 만큼이나 그 대가가 있다. 결과적으로는 시간 낭비다.


무엇이 낭비이고 낭비가 아닌지 모른다. 이른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한다는 말로 이물음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런데 앞으로도 뒤로도 생각해봐도 낭비가 아닌 한 가지가 있다. 지금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에게 조금은 과장을 보태서 고마워 하는 일. 고마움에서 만큼은 내 진심을 아끼지 않는 일이다.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커질 때마다 내가 그에게 고마운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 해본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작업이다. 그의 아픔이 나에게 이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다면 그는 나에게 큰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여러 주마등 속에 그의 얼굴이 여럿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웃던 몇 안되는 삶의 순간에 그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더 늦기 전에 내 안에서 그를 더 찾아야 한다. 나는 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생각처럼 길지 않았다. 시간은 이런 때 일수록 더 빨리 가는 법이다. 사랑과 깨달음 사이에는 언제나 미끄러짐이 존재한다. 그 시차 속에서 발생하는 것은 이별과 그리움이다. 사랑의 연장선이다. 그러니 이별과 그리움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은 온전히 당신을 생각하는 일이고, 내가 온전히 당신을 생각하는 일이 곧 사랑이다. 이 사랑은 당신과 이별한 후에 가장 격정적으로 시작됐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어쩌면 어느 때보다 가장 격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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