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무 May 16. 2023

랑시에르로부터

3




랑시에르에 따르면 문학과 정치는 그 속성을 같이 한다. 정치는 몫이 없는 자들이 그들의 몫을 주장할 때 시작 된다. 그 행위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주는 ‘감성의 분할’을 일으키고, '킁킁대는 짐승'을 말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문학은 몫이 없는 자들의 몫을 이야기 한다. 짐승의 울부짖음을 ‘정치’에 등기 시키는 역할을 문학이 수행한다. 이어질 논의는 이러한 랑시에르의 문학의 정치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 된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몫이 없는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회 하층계급에 속하는 이들, 시민(=인간)이 되지 못하는 이들, 또는 영영 2등, 3등 시민이어야 하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의 몫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할 것이나 떠오르는 이미지는 랑시에르가 제시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이라는 표상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 그들이 세계로부터 부여받지 못했거나 빼앗긴 것들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때때로 쓸 것이다. 이것은 문학이 될 것이며 곧바로 정치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자리로부터 나의 질문이 시작 된다. 자신의 몫을 주장해 나설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존재들의 몫은 누가 어떻게 찾아 나설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죽어있는 자, 살아 있는 채로 비명 밖에 지를 수 없는 자들의 몫은 어떻게 주장될 수 있을까. 그들의 침묵 또는 비명은 어떤 방식으로 문학이 되고 따라서 정치가 될 수 있는가. 그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몫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몫이 없다는 것을 표명할 언어조차 없다. 따라서 그들을 대리하겠다는 자들이 그 침묵과 비명을 ‘언어화’하여 문학으로 만들고 따라서 정치에 등기시키고자 할 것이다. 고통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방식은 늘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유일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사유되어 왔을 것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내가 이러한 방식의 기억과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미 오래 전이라면 오래 전에 제기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몫이 없음을 표명할 언어도 없는’이들에게 그들의 몫을 쥐어주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비언어’상태로 존재하는 소리들을 문학으로 만드는 또 다른 ‘감성의 분할’의 시도는 이미 있었다. 또한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죽어있는 자들을 재현하려는 시도도 발전해왔다. ‘재현 불가능성의 재현’에 대한 논의와 작가들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시도들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중대한 사건으로서 광주 518 민중 항쟁의 자리는 명백하다. 5월 광주는 오랜 시간 동안 형언되지 않는 웅얼거림이었다. 그것이 공식기억화 되어 역사라는 제도에 기입되기 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 그 웅얼거림을 재현하려는 방식과 그 범위는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어왔다. 518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는 데에 주력해야 했던 초기의 재현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시화’라는 의제가 가시화 하지 못한 채 남겨둔 것들을 쓰고자 했던 다양한 재현물 들도 있다. 후자에 대한 재현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단연 작가들의 고민은 후자를 향해있다. 그러한 고민을 떠안고자 시도했던 작품으로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 그리고 영화 <김군>이 적절한 시차를 두고 탄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과연 타당하거나 충분했느냐를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어쩌면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와서도 안 될 것이다. 기억하고 애도하는 재현은 시공간을 거듭해 수행되는 것이지 어느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문학이 그것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고, 어디까지 수행할 수 있는가는 따라서 계속해서 실험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dis-abili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