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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li Jul 21. 2020

A급 남자, B급 여자


나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매해 같은 병원에 가서 정기점진을 받고, 같은 원장님에게 건강 상태에 대한 총평(?)을 듣는 것으로 건강검진이 마무리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어마 무시한 말을 원장님한테 들은 날은 서른이 되던 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원장 선생님은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건성건성 내 건강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종이와 펜까지 꺼내 드셨다. 


그리고 종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A, B, C, D를 큼지막하게 적으셨다. 


자, 이것을 보세요. 

세상에는 A, B, C, D급의 여자가 있고 A, B, C, D급의 남자가 있어요.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남자가 무시당하고 살 수 있으니, 보통 A급의 남자들은 자기보다 조금 못한 B급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려고 해요. B급의 남자들은 C급의 여자를. C급의 남자는 D급의 여자를. 그러면 결혼시장의 마지막에는 누가 남을까요?

바로 D급의 남자와 A급의 여자예요.

여자가 너무 잘나 콧대를 계속 높이다 보면 결국 별 볼일 없는 남자를 만나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네……? 

선생님, 저는 제가 무슨 심각한 병에 걸린 줄 알았다고요. 



역시 의사라 그런지 배운 사람이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다. 

아주 그럴싸하게 덜 배운 여자가 되라고 설득하고 계셨다. 

자기 딸은 좋은 대학 가게 하려고 유학까지 보냈으면서.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잖아…… 

걱정을 붙들어 메시라고,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전 A급의 여자가 아니라 신분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할 뻔했다.



원장실에서 나와 한동안 멍해졌다. 방심하고 있다가 얼굴 정면으로 강력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서른이라는 생각에 심란한데……. 아이 씨……

엄마가 원장님한테 결혼하라고 한 소리 좀 해달라고 했나?

우리 엄마의 결혼 잔소리가 아주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해 추궁해 보았지만, 엄마는 그런 적 없다고 한다. 

“그 원장님이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재미있네.”

나는 전혀 재미있지 않은데 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몇 급 여자일까?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서 몇 가지 개인 신상 정보만 입력하면, 그 사람의 점수가 산출되어 나온다고 들었다. 어떠한 기준에 의해 그 점수는 산출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기준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직업: 외국 회사 마케팅 매니저, B

연봉: 00000원, C+

나이: 34살, D

특이점: 해외 살이 5년 차, F

성격: 자유 영혼. 종종 지랄발광, FFFFFFFF

총점 F



오늘 남편이 퇴근하면, ABCD급 이론에서 아예 쳐주지도 않는 F급 구제불능을 A+++ 여자처럼 봐주고 결혼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절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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