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하루의 비밀

by 꿈담은나현

창밖은 숨을 삼킨 채 멈춰 있었다.

바람은 결을 잃었고, 구름은 방향을 잃었으며,

나뭇가지의 그림자조차 벽 위에 굳어 있었다.


빛은 벽을 타고 흘러내린 뒤, 바닥 위에 얼음물처럼 고여 있었다.

고요는 실금처럼 벽을 타고 번져, 숨구멍마저 막아버린 듯했다.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감정이 눌려 숨죽인 정적이었다.

마치 세상이 숨을 참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강이안은 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속은 비어 있었고, 찻잔의 미온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텅 빈 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생각했다.

혹시 나라는 존재도 저 빈 잔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잃고 식어버린 감정일 뿐은 아닐까.


투명하지만 닿지 않고, 가볍지만 사라지지 않는 공허.

온기를 잃은 기억의 조각이,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이 ‘존재 한다.’라는 사실조차 어쩌면 착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공기를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고요 위를 걷는 바늘 끝 같은 목소리.


문은 닫혀 있었고, 종소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창가에 조용히 앉은 소녀.

햇살은 그녀를 피해 흘렀고, 그림자는 그녀를 감싸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빛과 어둠 사이,

이 세상의 질서에서 사라져버린 존재처럼 앉아 있었다.


무채색 풍경 위에 놓인, 투명한 여운 한 조각.

“이상하지 않아요?”

하루는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녀의 말투엔 언제나 작은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마치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상대의 마음결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


사진 속엔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 위로, 또 하나의 손이 얹혀 있었다.

그 손은 온전하지 않았다.

경계가 흐트러졌고, 붉은 감정이 번지듯 스며 있었다.

핏빛.

살아 있는 자의 온기가 아닌, 식은 감정의 잔재 같은 색이었다.


“웃고 있어도, 마음은 울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녀의 말은 습기처럼 스며들어 이안을 감쌌다.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아요?”

이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걷고 있었고,

차는 지나가고 있었고, 신호등은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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