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기억은 빛을 타고

by 꿈담은나현


찰칵.

셔터 소리가 정적의 막을 찢었다.

울림은 마룻바닥 위 먼지를 일으켰고, 구석에 숨죽인 공기조차 그 파동에 휘청였다.

인화지 위로 번져가는 붉은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피보다 진하고 감정보다 뜨거운 무엇이었다.


무언가가 기억 속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강이안은 손끝에 닿은 셔터에 남은 잔열을 놓지 못한 채 그 장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사진 속 소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빠.”


그 한마디는 전류처럼 공간을 타고 퍼졌고, 공기조차 얼어붙게 했다.

그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름’이었다.

기억을 불러내며, 감정을 찌르며, 존재를 다시 끌어올리는 힘.

강이안의 가슴이 뚝, 하고 끊긴 듯이 먹먹해졌다.

‘나를…?’

그는 숨조차 잊은 채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 아이의 눈은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가느다란 눈꼬리의 미세한 떨림.

가장 밝은 단어를 가장 차가운 말투로 발음할 때 생기는 이질적인 온도.

그건 그리움이 아니라, 경고에 가까웠다.


아이의 발밑에서 번지는 그림자라는 검은 먹물이

물속에 순식간에 퍼지는 듯했다.

파문은 그치지 않고 일렁이며 공간 전체를 물들였다.

무언가가,

아주 오래된 것이 이안의 가슴 밑바닥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폐 안에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더 있다.’

감각이 먼저 알렸다.

냄새도, 소리도, 형체도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언가.

이안은 천천히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을 다시 들여다봤다.

하얀 원피스, 단정히 묶인 머리끈, 잔잔한 미소.


하지만 미소 아래, 알 수 없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미묘한 일그러짐은, 친밀함보다는 낯선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마치 기억이 덧입혀진 인형을 보는 기분.

누군가가 오랜 세월을 쏟아 부어 만든 정교한 모형 같았다.


‘왜 나를 그렇게 불렀지?’

이안은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감각은 있었다.

그를 ‘아빠’라 부르는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익숙하면서도 두려웠다.


그 순간, 사진 속 아이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스쳤다.

렌즈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 속에서

자신의 뒷모습이, 사진기의 프레임 너머에서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렌즈 너머의 떨림.

손끝을 스친 서늘한 기운.


그리고 첫 손님의 사진에서 느꼈던 섬뜩한 감정.

가슴 위에 찍혔던 다섯 개의 손자국.

그중 하나는 흐릿했고, 마치 감정의 잔재처럼 반쯤 지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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