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신경쓰면 되는나라
사기꾼들은 일단 자기가 잘나가고 돈이 많은 것처럼 꾸미고 다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그런 겉모습을 많이 신뢰합니다.
우리는 흔히 ‘외모지상주의’를 얼굴이나 체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넘어 회사 간판, 학벌, 화려한 응접실, 외제 차, 명품 시계, 번듯한 명함에까지 지독하게 적용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그 사람의 말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즉, 그 사람 자체나 말, 행동이 냉정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그가 두른 화려한 외관이 '검증이 끝난 사람',‘검증된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화려함이 전제가 된 관계에서는 질문이 사라집니다. "이 사업이 정말 수익이 나는 구조인가?"라고 물어야 할 자리에 "저렇게 성공한 사람이 하는 사업이니 당연히 수익이 나겠지"라는 맹신이 들어앉습니다. 의심이 들어야 할 순간에도 "내가 저 사람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라며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탓하게 됩니다.
결국 사기꾼이 설계한 벤츠와 명품 시계는 단순한 과시용 소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해자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기 위해 투여하는 강력한 마취제입니다. 그 마취제에 취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실체를 보려 하지 않고, 그가 보여주는 화려한 홀로그램만을 쫓습니다.
이 ‘껍데기 숭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제가 몸담고 있는 법조계입니다.
국내의 많은 회사가 자문사를 선정하거나 사건을 의뢰할 때, 실력 있는 개인 변호사나 소규모 로펌보다는 대형 법무법인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면피(免避)’ 심리가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법무팀장이나 담당 직원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유명한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기면, 만약 패소하더라도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국내 최고의 로펌을 붙였는데도 졌다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다”라는 완벽한 방패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반면, 회사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발품을 팔아 실력 있는 강소 로펌을 찾아냈다가 패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난의 화살은 곧바로 그 변호사를 추천한 직원에게 쏟아집니다. “왜 검증되지 않은 곳에 맡겨서 일을 그르쳤느냐”는 질타를 받게 되죠. 결국 직원의 처지에서는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니, 나중에 패소하더라도 비난을 피하고자 거액의 회삿돈을 들여 대형 로펌이라는 ‘간판’을 선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건의 규모나 기록의 양, 투입 인력의 숫자를 고려해 대형 로펌이나 전관 변호사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만난 그들이 항상 비용만큼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기업이 사건의 난이도에 비해 턱없이 과한 법무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노무법인 대표님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로 외국계 회사와 거래하던 그 법인의 고객사 중 외국 회사 한 곳이 이사 해고 무효 소송을 국내 유명 대형 로펌에 맡겼습니다. 2020년 당시 변호사 비용이 시간당 차지(Time charge)로 계산되어 약 20만 달러(당시 약 2억 원 상당)가 청구된 것을 보고 외국회사는 까무러칠 뻔했다고 합니다.
외국 법인이라 비용이 높을 것은 예상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사건 기록을 직접 검토해 보았습니다만, 냉정하게 말해 그 사건은 결코 2억 원이나 주고 맡길 만한 난도가 아니었습니다. 브랜드 값과 실질적인 법률 서비스의 가치를 압도해버린 것입니다.
한번은 종합건설회사가 공사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제가 도급인을 대리하여 그 회사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1심에서 피고인 건설회사는 저와 비슷한 개인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습니다. 결과는 원고 승소. 판결문에는 피고 회사가 잘못 시공한 증거들이 명백하게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도급 금액이 3억 원인 공사에서 손해배상으로 3억 원을 통째로 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죠.
하지만 건설회사는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부실한 시공’이라는 본질이 아니라 ‘변호사의 체급’이라는 껍데기에서 찾았습니다. 1심 변호사가 약해서 졌다고 확신한 그들은 항소심에서 대형 로펌 소속의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화려하게 등판시켰습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대형 로펌은 그야말로 '돈값'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사가 완벽했다는 논리를 화려한 준비서면에 담아냈고, 판사가 이해하기 쉽게 정교한 PPT와 동영상까지 제작해 법정에서 상영했습니다. 법정 안은 대형 로펌의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득 찼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2심에서도 건설회사는 참패했습니다. 심지어 손해배상 금액은 1심보다 더 늘어났습니다. 화려한 영상과 전관의 이름값도 '잘못 지어진 건물'이라는 차가운 물리적 실체를 덮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우연히 피고였던 건설회사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그 로펌에 비용 얼마나 줬습니까?”
그의 답변은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말도 마세요. 법정에서 보여준 PPT 제작비만 3,000만 원이라던데요.”
결국 그들은 3,000만 원짜리 PPT를 띄우고도 패소했습니다. 1심 판결문에 적힌 '시공 과실'이라는 본질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을 가려줄 '화려한 껍데기'를 사는 데 수억 원을 쏟아부은 셈입니다. 일반적인 상품은 비쌀수록 질이 좋지만, 법조계의 서비스는 가격과 실력이 반대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입니다.
만약 그 건설회사가 ‘대형 로펌’이라는 간판 뒤에 숨어 면피할 궁리를 하는 대신, 1심 판결 직후 자신의 과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합의에 나섰다면 어땠을까요?
항소심에 쏟아부은 수천만 원의 변호사 비용은 물론이고, 판결 확정이 늦어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 12%의 지연이자만 아꼈어도 그들은 수억 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기란 타인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를 속이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사기꾼은 화려한 외관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고, 피해자를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속는것이죠.
화려한 껍데기는 당신의 눈을 가리는 가림막이자,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취제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판단할 때 외관은 철저히 무시하십시오. 외관은 결코 내실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당신 앞에서 차, 시계, 재력, 과거 이력을 지나치게 자랑한다면, 그 즉시 그를 ‘나를 사기 칠 후보 1순위’로 올려놓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