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속인 자에 대한 분노보다, ‘내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훨씬 더 고통스러워합니다. 사기꾼, 위정자, 사이비 교주들은 인간의 이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기꾼들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피해자들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 필사적인 자기 합리화를 시작합니다. 한 번 믿기로 마음먹으면 그 믿음의 근거가 허위로 밝혀져도 이를 부정합니다. 설령 99%가 거짓이고 단 1%의 진실만 섞여 있더라도, 피해자들은 그 1%를 99%의 진실보다 더 크게 확대 해석하며 믿음을 유지하려 애씁니다.
실제 사기 피해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가해자에게 들었다는 말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들입니다. 피해자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99%의 절망적인 증거를 외면한 채, 사기꾼이 던져준 1%의 '믿고 싶은 구석'을 생명줄처럼 붙잡습니다.
그 1%를 근거로 "거봐, 저 사람은 진심이야"라며 사기꾼을 대신해 자신을 설득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자기 합리화'의 극치가 바로 1992년 다미선교회의 ‘휴거’ 사건입니다.
10월 28일 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속된 시간은 지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사기극임이 증명된 순간 분노하며 흩어져야 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기이했습니다. 일부 신도들은 울부짖으며 “우리의 정성이 부족해 일정이 연기된 것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신 것이다”라며 오히려 가짜 예언자를 두둔했습니다.
1%라는 극히 미미한 진실을 가지고 사기꾼의 말 전체를 믿어버리는 이유는 뭘까요?? 이미 수억 원을 태웠거나 인생의 황금기를 이 사업에 바쳤습니다. 혹은 다미선교회 신도들처럼 이미 살던 집을 팔고 전 재산을 교회에 헌납했습니다. 이때 "이건 사기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쏟아부은 내 모든 돈과 시간은 즉시 ‘쓰레기’로 확정됩니다. 따라서 사기꾼은 사기꾼이어서는 안되고, 사이비 교주는 사이비 교주여서는 안됩니다.
내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그 공포를 인간의 뇌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공포와 고통을 마주해야 합니다. 내가 속았다는 걸 인정하는 그 찰나가 바로 인생의 '손절' 타이밍입니다. 사기꾼에게 "마지막으로 믿어볼 테니 이번엔 꼭 지켜라"라고 말하는 건, 도둑에게 "우리 집 안방 열쇠를 줄 테니 이번엔 꼭 내 물건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기꾼이 주입한 1%의 환각제를 버리고 "내가 속았다!"라고 외치십시오. 그 고통스러운 외침이야말로 당신이 사기꾼의 설계도에서 벗어나 다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복귀하는 진정한 첫 번째 기념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