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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눕작가 Oct 18. 2023

나를 더 강하게 만든 시련

“내년부터 다른 부서로 가시게 됐어요.”

살면서 일이 내가 예상한 대로만 흘러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작년 12월 16일 오전, 담당 임원에게 전화 받은 순간 만큼은 그야말로 ‘예상 밖’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 이동 시즌에 임원이 직접 전화를 직접 걸다니, 절대 좋은 일일 수가 없었다.

(가장 최근 임원에게 직접 연락을 받았던 것이 진급 누락 소식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의미 없는 겉치레 뿐인 인사말이 오고 갔고, 직후에 이어진 것은 ‘내년부터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단순히 부서 이동이라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나 포함 3명의 업무, 다른 4명이 나눠 하고 있는 것까지 총 7명이 나눠하는 일을 싹싹 긁어서 혼자 가져가라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유일하게 희망을 걸고 있는 프로젝트 딱 하나만 빼고 가져 가라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이 노른자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그들에게 있어서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그 걸림돌을 다른 부서로 떠넘기기 위한 좋은 교환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결국 저들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당장 눈 앞에 놓인 20년 차 부장님의 일까지 나 혼자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사실 권고사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은 아닐까,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줄곧 나의 (아무 대책 없는) 퇴사를 반대하던 와이프 조차도 이번 만큼은 말리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어.”

출처: 만화 '베르세르크'

내가 좋아하는 만화 ‘베르세르크’ 에 나오는, 매일 밤만 되면 끔찍한 괴물들에게 습격 당하는 저주에 걸린 주인공의 대사이다. 남들은 곤히 자는 밤부터 새벽에 해가 뜰 때까지 그는 매일 괴물들과 싸워야만 한다.

그에게 있어서 회피란 곧 죽음이다.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지나칠 정도로 정직해서 회피하는 자들은 절대 낙원에 발을 붙이게 하지 않는다.

회사 덕분에 소소하게 ‘3.5인분’의 업무와 ‘의욕 없는 부장 2명’이 파트너라는 아주 이상적인(?) 업무 환경으로 2023년을 시작하였다.


괴로움에 절규 했지만 도망쳐도 남는 것은 늘어만 가는 업무와 지옥 같은 불안 뿐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실험해가며,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회사의 인정을 받고 동시에 원하는 회사에 이직이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아마도 이 문장의 행간에는 ‘죽을 만큼 아프지만’ 이라는 단어가 생략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15년의 경력이 차이 나는 사수에게 내는 의견마다 까이기만 했던 나는, 시니어로 위치가 올라가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엉성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할 수 있었고, 팀장은 물론 임원도 내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새삼 성장한 내 모습을 흡족히 바라보고 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지 않았던 나는 더 강해졌다.

내가 그 때 도망치듯 퇴사 했다면 과연 지금 느끼는 기분을, 지금 가지고 있는 실력을 언제 쯤 가질 수 있었을까? 

다시 똑같은 어려움이 닥쳐온다면 나는 또 도망가지 않았을까? 그 끝에 좌절 외에 다른 것이 남아 있었을까?


시련을 훌륭히 극복한 나 자신과 지지해준 와이프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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