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3
어제 아침에 눈을 뜨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이렇게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있었다.
목을 움직일 수도,
머리를 들 수도 없던 어떤 날.
그날이 기억난다.
햇빛이 바로 들지 않던 지하 같은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드러누워 있던 그날.
나는 그 전날 저녁,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나왔다.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건물 밖에 있던 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돌아왔었다.
그 기억 밖에 없었는데,
다음날 아침,
온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내 몸이 이렇게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머리 하나가 이렇게 천근만근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있다가
내가 소리 없이 죽어나가더라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하필이면, 핸드폰이 책상 위에 있었다.
입을 앙다물고 기어 기어
얼마나 걸렸을지 모를 시간 동안
온몸이 땀에 젖도록 움직였다.
간신히 전화기를 끌어내렸을 때의 심정이란...
어제 아침은 그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적어도 몸을 움직일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목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데리고 간 지압원에서
뭉친 근육들을 풀어내면서
목과 허리가 비뚤어져 있는 것을 확인받았다.
오랫동안 이 통증을 견뎌왔던 나는 한순간에
미련스러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
나는 참으로 미련스러운 사람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바보다.
그 오랜 시간 통증을 참아온 것처럼,
나의 통증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믿고 살아온 나는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다.
그것이 가장 큰 통증이다.
2007. 12. 25.
2026. 2. 22.
2007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무엇을 했을까.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
날짜를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결혼을 파기하면서
그에 뒤따르는 통증에 대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알았어야 했다.
그 통증은
머리를 못 드는 정도가 아닌
위경련으로 쓰러지는 따위가 아닌
더한 것이라는 걸.
하지만 어떤 통증이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흉터는 있을지라도
새살이 돋고
그 새살은 부드럽다.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
언제든 웃을 수 있다.
어떻게든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