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들

사람이 그리웁다 #10

by 채온




내가 너무 힘들다고,

이 상태로라면 죽을 것 같다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단호히,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죽어! 그럼, 죽어!

그러면 되잖아. 차라리 네가 죽어!"


마치, 죽음이라는 거, 그거 별거 아냐.

식당에 가서 밥 한 끼 먹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야.


죽고 싶은데 죽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는 말투.


순간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한줄기 인간의 양심,

혹은 그 연민에라도 기대어보자는

나의 의도는 어이없이 빗나갔고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는 내가 아주 비열한 마음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어이없고, 기가 막히고,

슬프고, 아픈 일이 많은가.


그래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쓰며 버티게 되는데,

한순간 나는 삶의 맥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텅 비어갔다.


살을 섞으며 자식을 낳고 살아온 사람에게

고작 들을 수 있었던 말이

그래, 죽어.... 였다니....

나로서는 이만큼 어이없는,

이만큼 허탈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다가,

나는 한동안 지하철 역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게도 아프고 슬픈 죽음의 기억이 있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죽음에 대한

처참한 대화의 기억이 있다.


불현듯 떠오르는 대화의 장면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생기를 잃었다.


또다시 살아나는 통증에

몸서리치듯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래, 잊어야지. 잊어야 해.

아픔도 미움도 모두 다....


나는 아직 내가 죽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내게는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죽어야 했었다면,

죽는다면 그것은

이미 훨씬 전에 일어났어야 할 일이다.


내가 두 아이를 낳기 전으로 말이다.

이제는 정말 죽을 수가 없다.


이 아이들을 사람으로 자라게 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죽을 수가 없다.


사람에게,

그것도 아주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에게

‘그래, 죽어!'라고 그렇게 생각 없이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삶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없이

그렇게 막돼먹은 말을 하는 놈으로 자라지 않고,

사람으로 자라게 하려면 말이다.


슬프고 힘든 일이 많지만,

견디는 것도 힘이라며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 죽어….라는 말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런 사람과 살았던 나의 지난 선택이 불러온

이 모든 결과물들을

내 삶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쩌면 더 기막히고, 가슴 치는 일들이

내 삶 안에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소 눈물 어린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야만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삶은 살아가기 위해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죽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2008. 5. 19.




2026. 3. 19.



다툴 때도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다.


언어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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