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9
후배가 내게 말하였다.
"돈을 많이 벌어요. 열심히 모아요.
그리고 아프면 안 돼요."
그녀의 말을 건성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H와 W를 돌보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지 말아야'가 아니라
'아플 수 없는' 현실이다.
아무도 나를 돌봐줄 수 없다.
오로지 내가 나의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뿐.
그래서 나는 죽더라도 아플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괴롭히고 고문하는 사람.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는 3개월을 아이를 보지 않고도
희희낙락 잘 살았던 사람이다.
이제와 이런 식으로 시시 때때 들이닥쳐서
나를 공포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저 나를 괴롭히자는 속셈이 아니고서는
자식을 생각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대문을 때려 부수겠다고
무수히 걷어차고 때리는 동안,
H는 공포에 질려 소리 내어 울면서
나를 향해 뛰어왔다.
아이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렸다.
결국 112에 신고해서 경찰을 불렀다.
이 나라의 경찰들이 하루 종일
나를 지켜주는 경호원도 아니고.
그들은 사고가 나면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제대로 수습이나 해줄는지.
고작 내가 다치면
병원에 실어다 주는 정도겠지. )
정도뿐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해 주었다.
오늘 아침, 청소를 하면서
H가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였다.
그래. 너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겠다던
너의 엄마는, 너희를 위해서 열심히 살겠다던 엄마는,
어쩌면 죽음과 같은 삶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너희가 내 곁에 없는 삶.
그게 바로 죽음과 같은 삶이 아니겠니.
하지만 완력과 공포 속에서
다시 너의 아빠를 만나게 된다면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너희들과 엄마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하지만 그것을 너의 아버지가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엄마는 너희를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어쩜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 엄마는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그녀들이 너무도 이해가 간단다.
오죽하면, 오죽하면.
미칠 듯이 괴롭고, 죽을 듯이 무서워서.
진저리 쳐지도록 끔찍해서 그렇게 떠나버렸겠니.
제발, 제발. 너희가 건강한 사람으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곁에서 지켜줄 수 있도록.
그렇게
제발이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이 우리를
관대하게 껴안아주면 좋겠구나.....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하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이 삶이
정말로 나로 하여금 이런 생각까지 하게끔 만든다.
불안과 공포로 밤새 잠들지 못하면서
나는 한껏 울었다.
한 사람을 잘못 선택한 대가가
이렇게나 크고 무서우리라고...
나는 너무나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같은 삶을 살았다.
무섭지 않다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2008. 4. 6.
2026. 3. 11.
저때는 많이 무서웠다.
서울 하늘 아래,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었다.
저때는 아직 그랬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저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아이들을 줘 버리고
떠나버릴 수도 있다고.
저때는 그도 많이 힘들었겠다.
기껏 표현했던 것이
그런 식밖에 되지 못해서.
3월이 시작되면서
일주일 동안 감기를 앓았다.
마음이 편해진 것인가.
한동안 아프지 않다가
마음껏 아팠다.
군대에 있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곁에 사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여전히 엄마에게 할 말이 많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내 삶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고
아이의 눈으로 맞닥뜨린
삶의 걱정도 해야 하고,
도저히 마음 하나로는 안 된다.
이 마음, 저 마음,
있는 마음, 없는 마음
죄다 다 꺼내서
멍석 깔듯 두루두루 펴내어
걱정도 하고, 염원도 하고,
축복도 하고, 사랑도 하고.
스물이 된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성인의 나이라고
품 안을 바로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기대어 오는 아이들.
한때는 저 아이들을
떠날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이들은 모르지만
나도 한때는 연약하기만 해서
그때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마음껏 아프고 나면
조금은 편해진다.
조금은 겸손해진다.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말한다.
그래, 실컷 다 말해 봐.
귀를 활짝 열어 놓고
너희들의 마음을 들어볼게.
다정히 말해 줄게.
엄마는 항상 너희들의 지지자니까.
*자정이 다 될 무렵, 큰 애에게 카톡이 왔다.
- 엄마, 나를 응원해 줘.
- 엄마야 네가 잘할 거라고 늘 믿고 있지.
항상 말하지만,
모든 일은 네가 마음을 가득 채운 다음에
진행해야 해.
책도 많이 읽고, 좋은 말과 글귀로
영혼을 살찌워.
응원해. 아들.
쿵짝 쿵짝, 뭘 그리 열심히 기획하는지
욕심껏 일을 하고 있단다.
그래, 잘하고 있다. 그럼, 된 거지.
잘 자라.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