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8
벚꽃 나무 아래서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는
동생 내외의 일본 소식을 접하면서 달력을 본다.
4월.
4월이다.
풋풋한 연두 빛깔의 잎사귀가
연한 살결을 드러내고 있는 4월.
유난히 4월이면 행복했던 기억.
4월의 의미는 나의 삶에서
항상 새로운 시작과 성장의 첫걸음이었다.
오늘 아침 H는 변기에 앉아서
열심히 볼 일을 본다.
그리고 볼일을 다 보았다고 나를 불렀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건만
오늘따라 나는 무척 행복했다.
출근길에 H를 어린이집 선생님께 데려다주고는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그래서 그 힘으로,
H가 내게 주는 이 행복한 힘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대소변 기능에 문제가 많은 이 병으로부터
이렇게 건강하게, 제 나이에 맞게 기저귀를 떼주고,
때가 되어 대소변을 가려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 줄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와 H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전혀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강해지기로,
더 굳세지기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
매사를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으로 일삼았던 그가
여러모로 나를 괴롭히고, 고문하더라도
나는, 이 아이를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치열하게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아이들의 엄마라는 것을 잠시 잊은 동안
나는 한 여자로서
무척 나약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았지만,
문득 정신 차려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거침없는, 두려움 없는, 강철 같은 엄마가 되었다.
그렇다.
때때로 내가 너무 나약해질 때,
되뇌어 본다.
뭐가 그렇게 힘드니.
H랑 W가 너의 가슴 안에 있는데...
그렇다. 정말, 그렇다. 뭐가 두려우랴.
이제 새로이 시작하는 것만 남았는데.
내 인생의 파란 날들을 위해서
이 아이들과 함께 두 손 꼭 잡고
앞으로 걸어갈 일만 남았는데....
그래. 4월이다.
2008. 4. 2.
2026. 3. 9.
오늘 학교에서 후배를 만났다.
한참 어린 후배지만
늘 의욕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그 애가 꽤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그 애의 지지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결혼할 때는 내게 많은 고민을 토로했다.
공부와 결혼을 병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그때, 내가 뭐라 했던가.
인생에서 소중한 사랑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그것 또한 삶의 중요한 공부다
그랬는지 뭐랬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난 후배를 사랑했다.
그 애가 선택한 삶도
그 애가 잘 살아가는 모습도
그 애가 낳은 아이도
몇 걸음 떨어져서 보는 그 애의 삶은
늘 이쁘고 고왔다
들려오는 그 애의 삶은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오늘 여러 달 만에 마주친 그 애가 내게 말했다.
H를 유난히 사랑해 주었던 그 애가
H가 언제 제대하냐고 물었다
언니는 이제 자유롭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언니를 존경해요.
전 지금 10살 아들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하루하루 도망 다니고 싶어요.
근데 언니는 혼자서 아들 둘을 키웠잖아요.
그 세월을 어떻게 보내신 거예요.
내가 바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 존경 내가 오늘은 받아들일게.
인정!
나 열심히 살았다.
사랑하는 두 아들 열심히 잘 키웠거든.
그 세월을 정말 이쁘게 사랑하고 살았거든.
전, 언니가 아들 둘 키우면서
박사논문 쓰셨을 때
처음으로 존경스럽다 했거든요.
근데 그때는 어렸던 것 같아요.
이제 살아보니, 지금 홀로 두 아들 키운 게
더 존경스러운 것 같아요.
난, 존경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니
네 말이 와닿기는 해.
근데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살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박사논문은 두 아들이더라.
걔들이 날 가르쳤지.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고.
타인의 자식도 나의 자식과 같다고.
세상의 모든 어린 생명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하라고.
세상의 모든 거친 어른에게
사랑으로 배려하라고.
그러고 보니, 우리 둘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대상은
우리의 자식이구나.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꼼꼼하게 나를 뜯어보는 맑은 눈망울.
그러니 이제 남은 시간은
우리 함께 잘 써 보자.
후회 없이 부끄러움이 남지 않도록.
인생의 마지막 박사논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