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들어 올린 왕자의 눈에 처음 보이는 건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이었다.
"저기, 할머니"
"어머, 정신을 차렸네요"
"어떻게 된 거죠? 또 여긴 어디죠?"
"불곰의 습격에 절벽 밑 연못으로 떨어져 정신을 잃으셨어요. 그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던 제가 발견해서 다행이지 큰 일 날뻔했어요. 제가 목숨의 은인이에요"
"정말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감사합니다"
"그럼 저와 결혼해 주세요"
이웃 나라 왕자는 사냥을 하다 숲 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 갑작스러운 불곰의 습격에 추락상을 입고서 아직 결혼을 못한 올해 백 살이 된 이 나라의 공주에게 구조되어 63 빌딩보다 더 높은 성의 탑에 감금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탈출은 불가능했고 결혼해주지 않으면 다시 절벽에서 떨어트리겠다는 공주의 말에는 진심 어린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요. 공주님 우리 결혼해요" 일단 결혼을 하고 방심한 틈을 타서 탈출을 도모하고자 한 왕자는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머, 왕자님. 그럼 이번 주말에 우리 결혼식을 올려요. "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을까요?"
"걱정 말아요. 이미 준비 다 되어있어요."
왕자가 구조된 그날부터 이미 준비가 시작된 피할 수 없는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인지?"
백 살 공주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버지예요. 인사드리세요"
미망인이었던 백 살 공주의 어머니가 백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이웃 나라 왕과 왕비가 동반 사고사한 뒤 홀로 남은 갓난아이와 결혼식을 올렸고 그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새해 새벽에 그녀의 어머니는 백 스물 입곱살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왕자는 차라리 다시 절벽에서 떨어질까?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결혼식 준비의 혼란한 틈을 노려 탈출할 수 있도록 더욱 빈틈없이 준비를 하리라 재다짐했지만 모든 계획은 불가능했다.
결혼식을 63층에서 올리고 신혼여행은 96층으로 가고 결혼 생활은 83층에서 해야 했던 왕자는 백 살 공주가 돌아가실 때까지 입곱살 난 장인을 모시고 아주 항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