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도 않고 또 멀리 가기도 힘든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멀리 갈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빨리 가지는 못했기에 소년은 쉬지 않고 오래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소녀의 옆에 있고 싶어서 걷고 또 걸었다.
시간이 흘러 멀리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소년은 이제 지치지 않고 소녀의 옆에서 계속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후에 소녀에게는 빠르게 걷는 능력이 생기면서 두 사이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소녀에게는 멈추거나 뒤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소년은 그런 소녀와 함께 갈 만큼 빠르지 못했기에 어느덧 소년의 시야에서 소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주저앉아 고민을 하던 소년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첫째는 소녀가 빠르게 세상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 이곳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둘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소년에게도 빠르게 걷는 능력이 생길 수 있으니 그때 소녀를 찾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를 선택한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반드시 소녀를 만날 거란 기대를 가진 소년은 비록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난 후에도 빠르게 걸을 수 있는 능력은 생기지 않았지만 쉼 없이 걷고 또 걷는다.
소년,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혹시 첫 번째를 선택했다면은 벌써 소녀를 만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멈추는 건 어떨까?
그렇게 십 년 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나고 기적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더 빨라진 능력 탓에 눈인사만 겨우 나눌 만큼 빠르게 스치듯 지나는 그들은 이제 더 이상은 소년이 아닌 소년이었고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소녀였지만 다시 만나는 순간을 꿈꾸며 걷고 또 걷고 꿈을 꾼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뀌게 합니다. 원하는 대로 다 바뀌는 건 아니지만 더디게 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만나고픈 당신의 소녀, 소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