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문장을 간결하게 쓰자.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것보다 쉬울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평소 말이 많은 성격 탓일까. 사실 나도 과묵한 남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침묵이 주는 어색함이 너무 싫다. 타고난 이런 성정이 문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전, 한 작가지망생이 글을 봐달라고 했다.
에세이를 내미는 그녀에게 본인 글이냐고 묻자, 뉴욕에 있는 여동생의 글이라고 했다. 주위에 글에 진심인 사람이 거의 없는 터라 반가웠다. 휴대폰을 건네받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감평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부산에 있다 보니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고, 숨고 같은 곳에서 사람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끝내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는 행운은 없었다. 결국 혼자 전전긍긍하며 글을 써왔다.
그 허기가 반영된 걸까.
내가 원했던 감평은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날카로운 비평이었다. 그래야 글이 다듬어지고, 더 단단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인의 동생 글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유난히 진지해졌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놀랐다.
처음 내가 썼던 글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단어가 많고, 문장에는 수식이 과했다. 그러니 자연히 문장은 길어지고, 가독성은 떨어졌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문장들이었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글의 아름다움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그녀의 글에 대해 문제점을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동족혐오였을까. 아니면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이었을까. 진실의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참을 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즈음, 옆에서 녹음을 하고 있던 지인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해요. 동생이 마음이 여린 편이라 상처받을 것 같아요.”
그제야 나는 내가 과하게 몰입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시 찍어도 될까요?”
사실 독설을 한 건 아니었다.
내가 했던 말들은 대부분 과거의 나를 향한 이야기였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칭찬이 아니라 정확한 비평. 그 절실함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그녀의 글을 ‘나의 기준’에 맞춰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장에 대해 할 말은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길 바란다.
문장이 너무 길지는 않은가?
수식어가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가?
잘 쓰고 싶은 마음,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글도 사람과 같다. 억지스러운 액세서리보다 먼저 갖춰야 할 건 건강한 몸이다.
이 글은 마흔 이후 브런치에서 독학으로 글을 쓰며 출판 제안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을 솔직하게 나누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