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와 입국기
지금도 시간대 별로 이스라엘에서 가나 가는 길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텔아비브에 갈 일이 없었는데 전화로는 해결이 안 되어 가나대사관을 방문하러 갔던 날 (여행비자로 이스라엘에 체류 중임으로 당연한데) 입국비자를 받을 수 없다고 들은 날이 그 시작이다. 한국 여권으로 무비자 입국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너무 많아서 당연히 가나도 문제없을 줄 알고 착각하여 벌어진 일이다.
이스라엘 여행 동안에는 테러에 대한 무서움을 이야기하지만, 여행자들은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서 체크인하기 전 조금은 특별한 인터뷰를 거치는데 이때 테러 그룹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증명해야 하는데 이 인터뷰가 난 그렇게 차갑고 또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할 때면 입국할 때의 이미그레이션보다 날 더 떨리게 한다.
그렇게 떨리게 통과해서 일등으로 체크인 데스크가 오픈하자마자 체크인을 하려 했는데 직원에게 바로 탑승 거절을 당하였다. 이유인즉슨 가나에 입국하는 티켓은 있지만 출국하는 티켓이 없어서였다. 한국인인 내가 아프리카 가나로 불법 체류하러 간다고 의심을 받아야 한다니 당황스럽지만 당장은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거기에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마 내가 비자가 없다는 사실을 항공사 직원이 알았다면 절대로 못 탔을 테다.
이들이 제시했던 방법은 티켓부스 가서 가나에서 옆 나라 가는 티켓이라도 구매해서 오라는 거였는데 확인해보니 가나에서 옆 나라인 토고로 이동하는 항공 티켓 가격은 당시 통장 잔액의 두배에 달하였다. 가나대사관에서 비자 거절되었을 때와 같이 또다시 연락망을 동원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보지만 실제 진행되는 것은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공항 바닥에 앉아있었다.
이스라엘 여행하며 만났던 브엘세바의 친구들을 기적처럼 만나서 물어보니 같은 비행기라고 하는데 이들은 슬프게 본인들끼리 먼저 들어가 버렸다. 그래 차라리 이스라엘에 더 있으라는 뜻이 구 나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질문하나 하고 환불에 대해 이야기하고 떠나자 하며 마음을 다잡고 처음에 만났던 직원 말고 일부러 다른 직원에게 가서 시도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고 아디스 아바바에서 경유해서 가나 아크라에 도착할 때까지 가나 비자 걱정은 안 하고 옆에 손님이 없어서 누워가기도 했고 환승하고는 당시 기타를 정말 하고 싶어 음악 들으며 쉐도우 연습을 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아티스트 정신으로 꿋꿋하게 이어나갔다.
공항 도착해서 걱정하고 들었던 것(추방 아니면 잘해야 48시간 환승비자)에 비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가나 도착 비자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나 입국비자받을 때 500만 원 이상의 통장 잔고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이건 패스받았다.
일처리가 늦는데 거기다가 진행 절차에 따라 따로 줄을 서는데 총 4줄이나 되었고 서류 작성하고 돈 내고(ATM도 공항 내에 없어서 밖으로 나가던 길에 일행을 만나 현금을 받았다) 느긋하게 진행하고 다 끝났다 싶었는데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를 확인하는 이들에게 잡혔다. 카드를 촬영해둔 사진을 보여주니 그러면 여권도 사진 찍어 갖고 다니지 왜 들고 다니냐는 타박만 들었다.
내 예방접종 카드를 들고 있는 팀원들이 한국에서 출발해 가나에 도착하려면 내가 오늘 타고 도착한 시간대와 동일한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아바바에서 와야 해서 꼬박 24시간을 공항에서 있어야 한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될 대로 되라지 직원 앞,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버렸더니 직원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방법을 알려준다. 돌이켜보면 내가 막무가내인 것 같다.
20달러를 주면 통과시켜준다하길래 마침 100달러를 이스라엘에서 받았기에 자랑스럽게 주었더니 (구권) 달러라서 25달러 받아야겠다고 한다. '그래요 님 가지세요.'
- 후에 알았지만 내 카드를 갖고 오기로 하셨던 일행은 내 카드를 가져오시지 않으셨다.
원래 힘들어야 할 이미그레이션은 이스라엘에서 출생했다는 공항 직원이 도와주어서 프리 패스를 할 수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이미 공항직원들에 의해서 배달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내 캐리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 팀원들 픽업하러 다시 공항에 가서 군인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다가 너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도 된다고 내 속내를 알고서는 먼저 말해준다. 이건 인천공항에서 짐 찾고 세관 신고서 제출하고 자동문 나왔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다시 말해 당일 탑승객도 아니었던 가족이 자동문으로 역주행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공항 내부로 들어가서 일행들을 만나서 허그하고 팀원들 짐은 다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내 캐리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크라에서 8시간 걸리는 쿠마시(가나 친구에게도 시골이라고 듣는 도시, 쿠마시!)로 이동하였다.
첫날은 현지에서 생활하시는 70대 대사범님의 옷을 빌려 입고 남은 날은 일행 중 40대 사범님의 속옷과 도복에 그렇게 빌려 입고 일정을 마쳤다. 쿠마시에서의 짧은 일정 후 다시 아크라 돌아와서는 다행히 도착한 내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고 내 마음은 끝었는 긍정으로 '찾았으니 어디야'라고 생각했다.
긴 이동 끝에 토고 숙소에 도착해서 캐리어 열어보니 잠겨있던 자물쇠는 부서져 있고 짐 검사를 하신 친애하는 이스라엘 항공 직원분들이 나라의 보안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나는 무슨 심보였는지 내 가방을 열려면 나를 불러라는 고집으로 잠겄던 속마음을 그대로 기억한다. 내가 잘못했네.
진실은 정확하지 않지만 토고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두렵지 않은 핵을 나에게 선물해 준 곳이다. 그의 성은 폐요 이름은 결, 이름하여 폐결핵이다. 현장에서 병원 진단을 받았을 때는 장티푸스와 말라리아를 의심하였다. 말라리아 검사 결과를 받으려면 현지 사정에 의해 약 3일 정도 걸리는데 그 때면 나는 이미 토고를 출국한 상황이기에 검사를 하진 않고 대신 말라리아 약을 3일간 복용하였다.
- 한국에 돌아와 x-ray 촬영을 해보니 결핵을 이미 자가 치유를 한 번 하였거나 아직 활동하기 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몇 개월 후 토고 때와 비슷한 증상으로 재검사를 해보니 활동 중인 결핵이 진단되었다. 나의 인생 첫 2주 자가격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