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fter Corona) 여행법
하루에 1km 이상을 걸었던 날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조차 이제는 희미하다. 최근에 그나마 가장 많이 걸은 날이 아마 2주에 한번 정도 생필품 사러 나간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구석구석 뒤지는 날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콜롬비아를 떠나 북미를 종/횡단하고 마다가스카르에 오기까지 몇 만 km를 이동했는지 모르겠지만, 마다에 오고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극단적일 정도로 움직임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말이 몇 만 km이지 실제적으로 내 발로 걷는 거리보다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이는 거리가 더 많기 때문에 걷는 거리 자체만 놓고 보면 별반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묶일 때가 있으면 풀릴 때가 있고
풀릴 때가 있으면 묶일 때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면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많이 괴로웠겠지.
고독과 외로움을 구별하여 보는 방법을 배웠던 지난 추운 겨울의 시간이 없었다면
마다의 뜨거운 겨울에 다양하게 덮쳐오는 감정의 바다에서 나침반 없이 방황하는 배와 같았겠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B.C(Before Corona)에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때는 이러했는데 추억하다가 전부터 읽어야지 하고 저장만 해두었던 책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오노 미유키, 이혜령 저)를 읽었다. 책은 스페인의 유명한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에세이와 관련 정보를 소개하고 있어 쉽게 근방 읽힌다.(그 나라의 최근 행보는 싫은 동시에 감정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은 피하고 싶다.)
콜롬비아에서 생활하며 시작한 스페인어가 중간중간 짧게 적혀있어 반갑게 읽으며 내가 순례길을 걷는다면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다. 혼자 걸을 것인가 그룹으로 갈 것인가 가서 일행을 만들 것인가 가면 어떤 스타일로 걸을 수 있을까 등등의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A.C(After Corona)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은 접어두고 하는 말 그대로의 상상이다.
스페인에 대한 개인적인 인연을 생각해보며 상상을 구체화시켜보면, 스페인은 내가 학교 다니며 활동했던 서울시 생활체육회 시범단에서 스페인 파견에 대한 이야기가 돌면서 갈 수 있을까 기대해보던 곳이나 내가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서 못 가게 되어 언제 인연이 닿을 수 있을지 몰랐던 나라이다.
그러다가 2년 전 여름에 이스라엘에서 콜롬비아로 2주간 태권도 교육과 시범을 하러 가게 되었고 항공은 Air Europa를 타게 되면서 콜롬비아로 갈 때는 마드리드에서 환승만 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때는 환승에 일부러 하루의 시간을 두어 마드리드 중심지를 조금 걸어본 것이 유일한 기억이다. 그때 돈 아낀다고 지하철과 (캐리어 끌고 다니기 힘든) 도로에서 캐리어 끌고 다니느라 사서 고생했던 기억이다.
어디에서나 걷는 여행이 매력적임은 당연하고 스페인에서의 짧은 시간 도심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렸던 기억 때문인지 스페인의 역사가 담겨있는 순례길을 걷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순례길에는 여러 경로가 있어 걷게 된다면 그저 걷는 여행이 될지 아니면 태권도인으로서 독특한 여행길이 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쉽지는 않다. 그래도 여행을 다니며 음악으로 소통하는 여행자를 보면 부럽기도 한 마음(특히 JTBC 예능 ‘비긴 어게인’을 보며 드는 마음)에 태권도를 통해 어떻게 불특정 다수와 함께 소통하며 걸을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한다.
매트 2-3장을 이고 다니다가 거리에 깔아놓고 (스포츠로서 보다는 무도적인 정신을 보일 수 있는) 명상을 하다가 단체 시범과 같은 화려한 움직임은 아닐지라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움직임’을 통해 소통하는 여행이 가능할까. 그런 태권도 버스킹(?)으로 떠돌며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여행 말이다. 태권도가 지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연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태권도 매트가 바닥에 깔려있다.)
매트의 크기와 은근히 무게가 있어 장거리를 걷는 여행에서는 짐이 되겠지만, 때론 노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매트리스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이 시대에는 역행하는 여행이 될 것 같아 웃음만 나오기는 하는데 집시니까 이런 시범여행(?)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시범여행이 시대적 흐름과 함께 가려면 콘텐츠 제작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야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 무게부터가 걱정이다. 하루에 이동거리 자체를 최소한으로 하여 다른 이들보다는 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걷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라시아를 통과해 모국까지 걷는다면? (웃음)
인류가 코로나를 극복해내고
또 다른 팬데믹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고
석학들이 예측하는 지구의 거주불능 환경이 아니고
아시안 하이웨이가 실현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여행을 생각해보는 것은 사실 이제 비행기 이용 횟수를 줄이고 땅에 붙어서 다니고 싶다.(flygscam/Flight Shame) 소위 말하는... 의 여행보다는 - - -의 여행, - - - 여행보다는 ------의 여행을 하고 싶다. 경제적이나 교통수단의 관점으로는 오히려 과거로 역행하는 움직임이 되겠지만 생태 친환경적인 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세계를 다니며 보았던 인류문화와 자연의 위대함을 우리 세대까지만 경험하는 이기적 행보가 되지 않고 우리 다음의 세대들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장에는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제한적이라는 합리화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작년 8월 스웨덴 소녀 툰베리가 뉴욕에서 개최된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러 갈 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패널과 수중 터빈이 장착된 요트로 보름간 대서양을 건너갔던 행동을 되새겨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