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집시걸음

집시 여행

감정의 겨울-1

by 태권도하는 집시


18년 여름.


나는 중동의 뜨거운 햇살 아래 겨울용 기모가 있는 짙은 네이비색 맨투맨티를 매일같이 입었다. 혈관이 막힌 듯 손발은 차갑고 다리는 조금의 바람 한올조차 허용하지 못하고 마치 동상이 걸린 것만 같았다. 중동의 뜨거운 햇볕 아래 동상이라니 내가 써놓고도 어이없지만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암에 걸렸다가 식보로 건강해진 어떤 이가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길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기적과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중동의 태양 아래에서조차 단 10초도 슬리퍼로 신고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때 나의 코드 브라운은 막을 수 없는 산사태였기 때문이다. 건축가와 일도 관계가 없는 내가 건축도면을 꾀고 잇듯 화장실의 위치를 움직이는 장소마다 미리 파악하는 것은 직업병과 같은 것이 되었다. 공공화장실이 적고 있어도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문화는 한국에 상가마다 있는 화장실에 감사를 느끼게 하였다.


그랬던 내가 영하가 몇 도인지, 옷을 다섯 겹을 껴입고 다녀도 추위를 느낄 수도 있는 캐나다의 겨울에서 슬리퍼를 신고 밖을 걸었다. 내 발걸음에 밝혀 아우성치듯 소리 나는 뽀득뽀득 눈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이 이야기했듯이 내 발바닥으로 대지에 입맞춤이 나에게 행복함이 되고 한편으론 내 십팔 년 여름을 회상시켰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요새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지켰던 나의 식단조차 간간이 깨고는 먹고 싶은 대로 먹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곳 캐나다 겨울 한가운데서 슬리퍼를 신고도 두려움보다 내 발걸음에 눈이 외치는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 들숨과 날숨에 생겨나는 입김과 내 폐를 가득 채우는 차디찬 글래시어 공기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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