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집시걸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이유

by 태권도하는 집시

2020.02

LA 거리를 걷다가 아끼던 후안 발데스 보틀을 떨어뜨렸다. 떨어지기 전에 이미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그런 보틀이었는데 떨어뜨린 충격에 아예 깨져버려 더 이상 사용이 불가하였다.

보틀은 위에 머리 부분과 중간 몸통 부분이 분리가 될 수 있는 구조여서 몸통 부분을 세척하기에 효율적인 구성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여행 도중에 뭔가 잘못된 것인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아예 봉인이 되어 열 수가 없었던 하자가 있었다.

거기에 물을 마실 때면 뚜껑 근처에 공간이 좀 있어서 그런지 물이 조금 흘러서 입을 대고 마셔도 턱에 구멍 난 것처럼 물을 흘리며 마시기 일쑤이다.

더군다나 좁은 가방에 많은 것을 넣고 다닌다고 백팩에 이 보틀을 전자기기나 책과 함께 넣을 때면 물이 흐르까 불안하여 방수 기능이 되는 바람막이에 감싸서 넣고 다녔다.

그럼에도 이 보틀을 버리지 못한 것은 콜롬비아에 대한 추억이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이 보틀로부터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하자가 있는 놈인데도 쓰임 받는다고 쓰이는데, 내가 그거 좀 불편하다고 이 보틀을 버리고 새 걸 산다면 마치 내가 내 스스로에게 자신은 쓸모없는 놈이라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졌다면 나만의 오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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