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는 과정이 남았으면 해.
여기서 나오는 피교육자들은 태권도를 훈련한 지 얼마 안 된 아프리카의 10대 학생들이다.
너희는 태권도를 왜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저번에 들었지만 이들의 생각이 변했을까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이들에게 있었을까 궁금해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태권도가 좋고 재미있어서요."
"너네가 정말 태권도가 좋고 재미있다면 나는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여주나 이들의 생각을 흔들어 줄 필요가 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씩 접근해본다. 전날도 오늘도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이유로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화가 나 진부한 이야기를 또 꺼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말도 없이 안 나오던 전에 비하면 자리에 없는 학생이 왜 없는지 알 수 있는 지금은 발전한 게 사실이나 아직 나는 목마르다.
"태권도가 정말 재미있다면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너희가 태권도를 훈련하러 오지 않고 다른 곳에 갈까? 이해되었어?"
"네"
"정말 꼭 가야 하는 건 가야 하지만, 너희의 말처럼 정말 좋다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희가 말하였지만 그 자리에서 거짓말이라는 게 인정되었던 것들이 있어. 기억해?"
"네"
"저번에 여기서 달리기를 했을 때도 그렇고, 어제도 거짓말이 있었는데 어떤 거였지?"
"우리가 열심히 달렸다고 하였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었어요."
"맞아, 잘했어. 너희는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생각하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해했다고 답을 하지만 실제론 이해하지 못한 거였지.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 못했다고 답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게 부끄러운 게 돼서는 안 돼. 오히려 스스로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대단한 거야."
"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학생들은 전부 나에게 집중하고 있어 실내에는 침묵이 감싸지만 나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막내야, 지금 옆에 있는 형들과 뛰면 네가 제일 못 달리잖아.(미안)"
(흔들리는 동공이 아련하게 보이지만, 잠깐만 기다려줘 나는 널 칭찬하기 위해서니까. 물론 마음의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가장 달리기를 못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맨 뒤에서 달렸잖아 그렇지?
제일 맏형이 너에게 맨 뒤에 가서 달리라고 말해서 갔던 거야?"
어제의 일을 되새기며 답은 바로 나왔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맨 뒤에서 달렸다고 한다. 형들 사이에서는 달리기를 가장 못하는 막내이나, 전날 운동에선 함께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과 달리며 본인보다 느린 다른 학생들에게 계속 달리라고 본인도 힘들게 달리면서도 말하길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내가 정해준 시간 내에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남들보다 힘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달렸던 거야?"
답은 빠르게 돌아온다. 내가 잘 뛰는 사람만 잘 뛰어서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시간 내에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느린 사람으로 인한 실패가 아닌 모두의 실패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나는 은근슬쩍 순서를 바꾸지 않겠냐고 매번 물었다. 처음에는 바꾸지 않더니 실패가 반복될수록 순서를 재배치하였고 기록도 변화를 보였다. 그럼에도 결과는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 왜 그렇게 했던 거야?"
달릴 때에는 빨리 끝내기 위해 답을 찾았지만, 나의 질문에 의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머리가 돌아가고 있다. 잘 달리지 못하는 학생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정리된 답변이 나왔다.
"잘했어, 너희가 통과를 못해도 돼. 태권도 기술을 완성하지 못해도 돼.
대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정말 중요한 거야.
그러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태권도 기술을 가르쳐 줄 거야.
너희가 못하면 나는 화도 내겠지(응?)
태권도는 기술이 있지만, 태권도에 있는 정신도 있어.
화려한 태권도 기술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못하게 되지만,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 때문에 정신이 더 중요한 거야.
그럼 너희가 태권도를 하면서 배운 정신이 뭐가 있어?"
말은 거창하게 이것저것 하였지만, 답은 반복이기 때문인지 바로 돌아왔다. 남을 도와주는 거요.
"맞아."
(칭찬하는 걸로 느껴지지 않는 억양과 표정 분위기로 말한다는 게 참 칭찬에 인색한 사범임을 되돌아본다.)
이들의 태권도 실력이 이 나라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성장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태권도로 밥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들에게 엘리트 체육으로서의 태권도 시범을 교육하는 건,
태권도 시범의 기초 기술이 시범에서 사용하는 화려한 기술의 기초인 동시에,
이들이 훈육(discipline)되기 위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권도 기술이 말 그대로 이들에게 돈을 벌어줄 수는 없어도,
어려운 기술을 훈련하던 과정 속에서 훈육된 정신으로,
혼자가 아닌 함께 훈련하는 시간에서 배운 과정이,
태권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며 살아갈지라도,
남들과는 다르게 교육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게
내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