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는 과정이 남았으면 해.
많은 이들이 태권도 때문에 나를 부른다. 그들은 언어가 다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태권도에 대한 이해도도 각자가 다르다. 단 한 가지 태권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름의 전문가라는 날 부름이 공통점이다. 이들의 배경이 다르듯 말로는 태권도라고 표현하나 그 안에 담고 있는 이해는 모두가 다르다.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에서 태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잠시 딴 길로 세서 인간이 감정을 표현할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예로 들고자 한다. 우리는 '짜증 난다'라는 표현 하나로 수많은 감정을 인스턴트처럼 말하고 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상황에 평소처럼 빠르게 오지 않는 대중교통을 기다리며 짜증 난다고 표현하고, 맛있는 음식을 상대에게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맛에 대한 안타까움을 짜증 난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속내에는 각자의 필요가 있음에도
그 진실한 속내를 표현하기보다
쉽고 간단하게 태권도를 교육해달라고 표현한다.
예산을 받았기에 태권도를 교육해야 한다 또는 중요 행사날에 태권도 시범을 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모든 이해관계가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면 오해하기 쉽다. 사범으로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태권도를 교육하고 훈련시킨다. 교육받는 입장의 피교육자나 제삼자 입장의 담당자는 생각했던 그림과 다르게 진행되는 흐름을 마주 대할 때면 사범인 나에게 뭐라 표현하기는 예매하다.
나름 태권도를 훈련해왔던 피교육자라고 만날지라도 기본훈련이 안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교육하는 태권도는 이미 세계적으로 많이 보급되어 있어 올림픽에서 자리를 확고히 다진 '겨루기'가 아니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새롭게 채택된 '품새'하고도 차이가 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태권도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뛴 '시범'에 집중한 태권도인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어느 공연장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시범에는 태권도에 속하는 모든 구성이 포함되기에 겨루기와 품새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느 수준까지의 겨루기와 품새도 교육할 수도 있으나 두 분야의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이미 현지에 나보다 훌륭한 겨루기 또는 품새 전문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태권도의 '시범'이라고 한다면 아직 한국의 실력을 따라올 국가가 없다. 겨루기와 품새가 지금의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까지 수많은 태권도 사범들께서 세계로 나갔던 모습을 본받아 시범을 알리고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선배들의 발자취를 이 시대에서도 보여주어야 한다.
배경을 정리해서 적용해본다면, 태권도 세계에서는 겨루기 / 품새 / 시범을 구분하여 교육하고 있으나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이들이나 이미 태권도를 훈련하고 있는 훈련생들에게는 이러한 배경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나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피교육자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내가 전해주고 싶은 태권도를 교육할 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많은 기회는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기도 전에, 내가 그들을 교육하는 교육자의 입장으로 그들 앞에 서게 했다. 20대의 청년이 언어와 문화도 모르는 나라에서 짧은 시간 내에 어떤 걸 전해주고 교육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내가 훈련해왔던 (나의) 태권도를 교육할 뿐이다. 내가 배운 게 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태권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질문이 생겼다. 내가 만나는 많은 기회는 보통 개발도상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태권도를 교육하는 일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에는 태권도를 소위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 수준으로 배우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으며, 특별한 기회로 태권도를 처음 접하는 학생도 있고 심지어 체육교육을 처음으로 배우는 학생도 많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에게 태권도란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되고 그들이 생각하는 태권도와 내가 생각하는 태권도가 같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나는 도와주려고 그들에게 가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일까.
나에게 최고의 태권도 교육이란 대학교에서 태권도를 전공으로 공부하며 훈련하였던 엘리트 체육으로서의 태권도이다. 동시에 너무도 많은 뛰어난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르게 잊히는 시범의 세계에서 생활한 나에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피교육자가 다치지 않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교육이다. 그렇기에 피교육자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접한 태권도 시범의 화려한 기술을 나에게 배울 일은 0%에 가깝다.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시범은 화려한 기술만을 보여주는 '자랑의 자리'가 아닌 점도 나의 이러한 결정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 태권도를 훈련하고 있던 피교육자. (색깔띠를 지나 검정띠의 시작인 1단 이상의 수준을 말한다.)
한국인 태권도 사범이 태권도 시범을 교육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 시범의 화려함을 알고 있는 이들은 기쁘게 달려온다. 동영상에서만 보던 화려한 기술을 배울 들뜬 마음으로 온다. 그럼 사범인 나는 먼저 이들의 체력과 나만의 실력테스트를 조용하게 시작한다. 그럼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전체적인 실력 평균이 내려지고 부상 방지를 위한 기초체력부터 죽어라 시킨다. 다른 말로는 뺑이(?)를 돌린다.
태권도 시범의 화려한 기술이 이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과는 딱히 연관이 없는데, 그러한 쓰잘데기(?) 없는 기술을 연습하다 부상이 생긴다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는가. 대한민국에 안타깝게도 대학 4년의 시간 동안 하얗게 불태우고 몸에 수술 자국만 남기고 졸업 후 태권도와 관계없는 일을 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그나마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할 수 있는 재력이 따라준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개도국의 환경은 대한민국과 같지 않고 한국에서도 책임져주지 않는 인생을, 내가 뭐라고 훈련 중에 부상당한 피교육자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겠는가. 혹자는 태권도 훈련하다 다치면 얼마나 다치겠어라고 할지 모르나, 허리부터 전/후방 십자인대 그리고 아킬레스건 등등 스포츠계에서도 손에 꼽는 연봉을 받는 축구 스타들도 위의 부상 이후에는 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올챙이 시절 화려한 기술들에 목말라, 배움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을 느껴보았다. 이러한 나의 내로남불을 깨달으며 전보다는 여유를 갖고 접근하고 싶으면서도 먼저는 이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내가 다치는 게 무서운 겁쟁이기 때문에 피교육자도 겁쟁이로 교육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