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겨울
수많은 사람이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 살아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매우 다양한 곳, 전 세계에서 퍼져 살아가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야만 한 이 시기에, 나는 왜... 조국을 떠나서 머나먼 타지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그것도 이전엔 와본 적도 없는 이 곳에서 이 시기를 살고 있는 걸까.
지인들과 함께 연락하다 보면 레퍼토리가 있다. '잘 지내지?', '한국은 언제 와?', '올 때 꼭 연락 줘!'이다.
2018년 남은 평생을 살고 싶었던 나라, 이스라엘을 의도치 않게 떠나게 되었다. 이후 베이스가 없이 발길이 닿는 곳으로,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을 내가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게 되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나는 그렇게 오세아니아 대륙을 뺀 5 대륙을 한 해 동안에도 두루 다니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Covid-19으로 인한 팬데믹이 발표되며 나름의 영화 한 편을 찍으며 멕시코-미국-마다가스카르로 이동하게 되었다. 마다가스카르는 이전에 와본 적이 없는 나라인데, 한해의 계절을 모두 보며 한 곳에서 지내본 일이 언제가 마지막 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내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주방+침실)이 생기니 너무 좋았다. 주변 지역에서 나름의 높은 지형에 지어진 건물은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아름다움 뷰를 제공한다. 아프리카에서도 수도 외곽지역이라는 특성에 눈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딱 하나이고 그 외에는 다 고만고만한 단독 주택들이다. 그리고 저 밑엔 누군가에겐 낚시터, 빨래터, 생활수 공급터, 샤워실, 화장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수영장인 호수가 보인다.
내가 결단을 내린다면 가족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은 있다. 단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교통비와 여러 의미로 험난할 가는 길이 싫고 이곳에 있음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에 남아있기를 매일 선택하고 있다.
처음엔 내가 목적 없이 방황하는 유랑민처럼 보여 사람들이 언제 자리를 잡으려고 그러냐고 핀잔을 주듯 한국은 언제 와라고 들렸다. 그러나 나도 나름 살기 위해 내 양이 뜯어먹을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이고 세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집시이다. 내가 나고 자란 한국 땅에서 적응하지 못했고 떠났고 그렇게 떠나온 해외 생활이,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생활이 더 적응이 되어가고 있기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겁나기도 하다. 가면 뭐하고 살 지부터 지금 돌아가 봐야 부모님과 함께 살며 부모님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10대 때와는 뭐가 다른 거지 생각 든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 어떻게 하든 해외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세월이 다 무너지고 뒤로 버려질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든다. 이스라엘에서 평생 살아갈 거라고, 한국에서 하던 대학원 공부도 마저 할 거라 자신 있게 휴학하고 떠났던 나의 모습이 부정당하는 듯하여 받았던 1년 비자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은 한국으로 향할 수도 없었다. 그때 한국으로 갔다면 오히려 쉬웠을까. 시간이 흘러 벌써 해외 생활이 연차로만 4년 차가 되어버린 지금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나를 마주 보려고 한다.
길 위에 나의 발은 가벼워 걷고 또 걸었다. 여러 차례 베이스를 가져보려 했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고 그렇게 비자가 허락되는 한에서만, 상황이 허락되는 한에서만 생활을 하고 길을 떠나왔다. 그랬던 발걸음이 팬데믹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멈추게 되니 나의 걸음은 내 안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매섭게 눈보라 치는 감정의 겨울이 나를 찾았다.
사회생활을 위해 장착해왔던 능력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정확하게 무엇이고,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은 무엇이고 등 여러 의미에서 애매한 경계선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나란 존재가 여기 있다. 밑져야 본전 도전해보는 건 나만의 자유라 했던가 현재 내가 도전해볼 수 있는 건 하나씩 도전해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게 되면서 명확해지고 있다. 순간적인 충동에 해본 것, 결국엔 나랑 안 맞을 것,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등과 함께 걸어온 길 위엔 벌써 눈이 쌓여 내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고독한지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도 그리 낯선 손님은 아니다.
그러던 중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인물에게 몇 달의 간격을 두고, 이젠 필요한 결단이 무엇이든 간에 결정을 내리고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 별거 아닌 걱정과 두려움인데 나 혼자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나만의 세상에 빠져 못 보고 있는 걸 날 진심으로 아끼는 인물들이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진심에 눈 덮인 길 위에 자그마한 풀잎이 따스하게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