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럼 이만.

by 옥상위에서

나의 인생 목적은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며, 내 인생의 육하원칙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궁극적인 내 삶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바로 '목적'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표가 존재한다.

선결 과제에 해당하는 목표는 경제적 자유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당연히 퇴사는 동반될 것인데, 왜 목표가 퇴사가 아니고 경제적 자유일까?


조금 돌려 이야기하자면 동영상과 스틸컷 사진의 관계와 유사하다.

동영상은 기간에 대한 그림이고, 스틸컷은 어떤 한 시점에 대한 그림이다.

내 목표는 '퇴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목표는 '경제적 자유'라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통과하면 끝나는 어떤 시점의 관문을 목표로 잡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내 생이 끝나는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래야 내 인생의 목적과 부합하는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


꿈꾸던 회사나 대학에 들어간 뒤 권태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목표를 어떤 한 시점의 스틸컷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코넬대학교 합격", "삼성전자 입사" 등.

이렇게 순간의 관문 같은 목표를 설정하면,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난 뒤 목표는 사라진다.

당연히 목표가 지향하던 목적의 방향성도 동반하여 훼손되거나, 힘을 잃게 된다.

목표와 목적의 추진력이 상실되거나 저하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권태가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순간의 값이 아닌, 기간 동안 지속되는 상태 값으로 설정한다.

"경제적 자유 유지", "내면의 고양 상태 지속", "건강 증진", "습관의 발전", "Grit의 성장", "가족 사랑".

이렇게 특정 완료 시점이 없는 목표들을 설정한다.

이 목표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어서 나의 최종 목적을 유지해 나간다.


세상은 아날로그 값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화를 거쳐 수준 값으로 만든 디지털 값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가 달리는 속도도 정확히 60km/h일 수 없다. 공기의 저항, 노면의 저항 등으로 속도는 수시로 소수점 값이 변한다. 세상의 모든 수치는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양자화되어 내 눈앞에 표시된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더 친근한 값은 아날로그 값이다. 정확히 완료 시점이 존재하는 디지털 값과 같은 목표의 설정은 세상과도 친근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시 때때로 변하는 세상과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목표는 기간을 고려한 상태 값이어야 한다.


퇴사는 할 것이다.

그런데 퇴사는 목표가 아니다.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누리며, 내 인생의 육하원칙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목적을 유지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 퇴사이다.

즉, 과정 중에 일어나는 단순한 이벤트일 뿐이다.


10년 이상 가슴에 꾹꾹 넣어두고, 매일 광택을 내어온 나의 궁극적인 인생 목적을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후련함이 느껴진다.

"회사 그만둬야지."라고 매일 푸념처럼 이야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진정 원한다면 지렁이 같은 움직임이라도 인내를 가지고 해내고 싶었다.

이토록 간절하게 인생 전반을 걸쳐 실행한 일이 있을까 뒤돌아 본다.


5년 뒤에 이 글을 읽을 때 이 글이 과거에 내가 나에게 한 예언처럼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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