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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와 증조 할머니

2007년 12월

내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 나이, 뭐 피웠다기보다는 담배 맛을 느껴본 때는 6-7살쯤이었다. 흡연 연령층이 계속 낮아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에 비교해도 참 어린 나이였었다. 내게 담배를 가르쳐 주셨던 분은 바로, 우리 할머니. 내가 참 좋아했었던 우리 할머니. 물론 지금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의 할머니. 좀 머리가 커지고 나서야 증조 외할머니인 줄 깨달았었다. 그 6-7살 때, 난 담배를 피우시던 할머니 옆에 앉아있었다. 어린 나이에 뭘 알았었던지, 할머니 옆에 그냥 앉아있곤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맘이 편했었나 보다. 


“할머니, 그거 맛이 어때? 맛 좋아?”


할머니는 선뜻 입고 물고 계시던, 1/3쯤 타들어간 담배를 내 손에 건네주셨었다. 짧아진 담배에 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갔었고, 살짝 미소 지으시던 할머니는 작은 눈을 크게 뜨시고 이마에 더 많은 주름을 만드시며 숨을 들이마시는 시늉을 보여주셨다. 난 그대로 따라 했다. 


“크헥!!” 


내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엄마와 작은 이모가 달려오셨던 것도 언뜻 떠오른다. 어린 나는 정말 어쩔 줄을 몰라했었다. 텁텁하고, 맵고, 쓰고… 뭐라 표현해야 할까, 목이 아프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난 그 맛을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통 잊을 수가 없다.


3년 전의 일이다. 여의도 근처의 한 커피 전문점. 평소에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는, 연하게 아메리카노 정도의 커피를 가끔 마실 뿐이었다. 그 여름 오후, 인터뷰를 위해 한 여기자 분과 같이 마주 앉았고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유달리 맛있다는 말에 ‘그럼, 어디 한번?” 작은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입 안에 들이키자, ‘앗! 이건.. 내가 아는 맛인데..?’ ‘맞아!! 증조 외할머니가 주셨던 그 담배 맛!’ 순간 그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아계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었다. 참 놀랍고도, 행복한 사건이었다. 맛 하나로, 세월을 되돌리고.. 사람을 데려오게 하다니.. 


 

커피 한잔에 할머니를 다시 느꼈었던 그해 여름은 증조 외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신 지, 만 3년이 되는 때였었다. 100세가 좀 모자라는 세월을 사시고 떠나셨다. 할머닌 장수하셔서, 내 아들 녀석의 고조할머니까지 되셨다. 물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고조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증조 외할머니는 서른이 채 못 되어서, 과부가 되셨고 그때부터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배우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늘상 교회에 다니시며, 예수쟁이가 담배를 못 끊으신다며 죄스럽다는 얘기를 종종 하셨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체구가 참 작으셨다.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목소리도 작으셨다. 늘 조용히, 조심스럽게 바느질을 하시고 음식을 만드셨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나는 건, 어린 나보다도 밥을 적게 드셨었다. 내게도 별반 다르지 않으셨다. 그렇게 칭찬해주신 일도 없으셨고, 다른 어른들처럼 뭘 자꾸 더 먹으라는 요구도 없으셨었다. 꾸중하시거나 뭔가를 가르치셨던 기억도 별로 없다.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생 정도까지는 늘 연한 미소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신 것. 아니, 할머니보다 키가 더 크게 된 중학교 이후부터는 쓰다듬어 주시는 것도 하지 않으셨었다. 또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가끔밖에는 뵐 수 없었는데, 그때마다 내 손을 잡고 작게 흐느껴 우셨던 기억. 내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는 정말 작은 노인이셨다. 고작 그게 전부이다. 


난 커피맛도 잘 모르고, 썩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가끔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으~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이야, 쓴데다가 담뱃재 같은 느낌.” 이러면서  증조 외할머니를 가끔 뵙곤 한다. 그래서 혹 그 커피맛에 내 혀가 익숙해질까 봐, 한 모금. 딱 한 모금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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