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게도, 집중하게도 해주는 곳
체대생인 내가 현대인이 스포츠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단 하나만 꼽으라면,
육체적 건강이 아닌 정신 건강 때문이라고 말할 거다.
수영은 몸을 단련하는 데도 좋지만,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팀이 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수업 후엔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그래서 치매 예방에도 좋고,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마지막 몇 분간의 명상 시간이 특히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내 몸의 아픈 곳, 내가 잊고 있던 감정, 혹은 지나치기 쉬운 생각들을 되짚게 된다.
그래서 요가를 하고 나면 일상 속에서도 문득 내 마음과 몸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골프 역시 요가의 명상처럼, 또는 수영처럼 몰입이 필요한 운동이다.
1번 홀 티샷을 할 때면, 평소에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이 다 잊힌다.
첫 샷부터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오늘은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나를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라운딩이 중반을 넘어가면 슬슬 생각들이 밀려온다.
‘내가 그땐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지나간 일을 너무 앞서 걱정한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먼저 상처 주는 말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별개인 것 같지만, 어느새 골프와 삶이 겹쳐 보인다.
예를 들어, 누구보다 티샷과 세컨드샷을 잘해놓고도 퍼팅에서 망쳐버리면 괜히 삶과 연결 짓게 된다.
‘아, 결국 중요한 건 끝까지 집중하는 거구나. 초반에 잘해도, 마무리를 못 하면..'
반대로 초반에 엉망이었던 샷을 마지막 어프로치로 칩인 버디를 만들어내면,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네’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공을 치는 방식, 동반자를 대하는 태도, 집중력등 이 모든 게 골프에서 그대로 드러나니까,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골프를 잘 치고 싶으면서도, 계속 치고 싶은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떨 땐 너무 미워지기도 한다.
사람 관계에 지쳐 있을 땐, 낯선 이들과의 랜덤 골프가 오히려 나를 살려준다.
반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과 필드를 나서야만 만족이 된다.
이렇듯 골프는 내 감정 상태에 따라, 관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역할을 한다.
정말 이만큼 내게 맞는 스포츠가 있을까 싶다.
잔디의 초록,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
그 공간은 나도 모르게 나를 긍정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는 골프장에 있으면 평소보다 더 많이 웃는다.
전반전에는 생각을 잊게 만들고,
후반전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그런 고요하고 치유적인 시간.
걱정이라는 건 골프공 같은 건지도 모른다.
가끔은 멀리 날려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찾으면 반가워지기도 하고,
어떨 땐 내 생각대로 굴러가주면 또 감사하게 되는.
그렇게 골프장은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 방향감각을 점검하게 해주는 건강한 장소,
나만의 안전한 곳이 되어주고 있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진다.
묵묵히 고민하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본다.
자연 속에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통해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시간을, 이 필드를,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골프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혼내지 않고
정답이 아닌 괜찮아지는 답을 알려준다.
늘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이 시간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 마음이 조금 복잡하면
필드로 혹은 연습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