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날은 기억되지 않는다.
쉬운 날은 기억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쉽게 얻어진 것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대로 어렵사리 얻은 순간들, 힘들었던 과정들은 빛바랜 보석처럼 오래 마음속에서 반짝인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순탄하고 편안했던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가 쏟아져 기대와 환상이 무너져도, 비 오는 낯선 골프장에서 파3 하나를 악착같이 완주했던 그 순간이 오래 남는다.
행복했던 순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던 순간이 더 진하게 새겨지는 이유다.
골프도 그렇다.
어린 시절 부모님 덕분에 편히 즐겼던 라운드는 흐릿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돈과 내 노력을 들여 장비를 바꾸고, 스윙을 가다듬고, 멘탈을 다잡아야 한다.
아이언 피팅을 받아도 적응에는 시간이 걸리고, 5번 우드만 사겠다던 나는 결국 7번까지 집어 들었다. 다행히 나를 믿고 밀어주는 가족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지만, 결국 성적은 내가 얼마나 집중하고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두 가지 — 자식과 골프 — 라는 말처럼.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냈던 순간이다.
러프, 벙커, 헤저드. 늘 피하려 하지만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만 한다면 더블, 운이 따라주면 파, 집중을 잃지 않으면 보기.
결국 어려운 홀일수록 해결했을 때의 짜릿함과 성장의 자신감을 준다.
완벽한 스코어는 금세 잊히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적처럼 나온 파는 몇 달을 가슴 뛰게 한다.
그게 바로 성취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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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도, 글쓰기, 집안일, 심지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쉬운 성과보다 끝내지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해냈을 때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자식 키우기처럼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과정 속에서도 작은 성장을 발견하면 그것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쉬운 길보다 쉽지 않은 길이 결국 더 큰 보상을 안겨준다.
나의 호주 생활도 그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3일뿐인 호텔 예약, 집은 어떻게 구하지, 이력서는 어디서 쓰고 출력하지…
불안했던 그 시간은 왜 여기 왔을까 후회로 가득했지만, 결국 다 해냈다.
아무나 올 수는 있지만, 아무나 오래 버틸 수는 없는 것이 해외살이다.
골프도 인생도, 실전은 연습보다 늘 어렵다.
연습장에서는 수없이 시도한 어프로치도, 로브샷도, 실전에선 꺼내기 어렵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시도해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은 오래 간다.
쉬운 길은 금세 잊히고, 어렵게 얻은 성취는 오래 남는다.
퍼팅도 그렇다.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퍼터 교체.
결국은 단순한 원인으로 정리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돌아보면 그 실패들이 나를 성장시킨 과정이었다.
글쓰기 또한 쉽지 않다. 술술 쓰이다가도 한 페이지를 통째로 지우고,
이건 그냥 일기 아닌가 싶어 버린 적도 많다.
그럼에도 끝내 다듬어 올린 글 한 편이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때, 그 기쁨은 오래 남는다.
비즈니스 역시 단순히 ‘잘하는 것’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서로의 만족을 맞추는 줄타기 속에서 양보하고 기다리는 일 —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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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려운 과정은 언젠가 반짝인다.
늘 빛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을 얻기 위해 어두운 동굴을 헤매는 시간도 의미 있다.
이제 30대 중반의 나는, 그 동굴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빛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