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말고 나보다 잘하고 싶어 졌다.
< Brighton lakes gc, nsw, australia>
시드니에서 골프채를 다시 잡은 나는 이렇게 중독이 되어버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겪어본 골프와는 상상하지 못할 재밌는 문화가 여기서는 너무 당연스럽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 호주의 골프문화의 특이점은 competition제도이다.
아마추어도 시합에 뛰게 되는 것!
한국처럼 치는 것이 social golf라고 하는데
정말 친한 사람과 즐거운 라운딩을 하고 싶거나, 초보이거나, 연습을 하고 싶어서 이 라운딩을 하는 사람보다
competition을 하고 싶어 골프장에 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전화로 부킹 하는 게 아니라 각 홈코스의 연간 회원권을 사면
자기 넘버를 주고 각자 원하는 자리에 개인이 예약해서 모르는 사람과 랜덤으로 칠 수도 있다.
이 한 코스에 그날 시합비(2만 원 정도)를 내고,
200명의 사람들과 시합을 하는 거다.
여기서 또 하나 멋진 것은 모든 아마추어가 자기 정식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핸디캡을 기준으로
stableford, par game, stroke play, match play 등 그날의 게임 방식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그중 자기 핸디캡에서 비교적 더 적게 친 사람 1~200등까지 등수가 매겨진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상금을 준다.
많지는 않다. 5~50불, par3에서 잘하면 20~ 200불 near pin도 있다. 그리고 매 게임 그 돈이 적립되어 맛있는 걸 사 먹을 수도 있고 프로샵에서 원하는 채를, 옷을 주문해 살 수도 있다.
<Pennant hills gc, nsw, aus>
돈 주는 것도 다 좋고 동기부여가 되고 기분 좋지만 이 돈을 따는 것이 '남을 이겨서'
가 아니라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핸디가 25인 사람이 20개를 쳤고,
핸디 20인사람이 20을 쳤을 때 돌아오는 상금과 동반자들의 축하가 다르다는 것이다.
본인의 핸디캡보다 잘 치면 그날은 내가 상금을 따는 날인 것이다. 그리고 winner로 일주일 내내 골프장 홈페이지에 내 이름이 떡하니 걸려있다.
나는 골프의 묘미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이기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것.
어릴 때 공치는 법을 배웠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클럽을 들었다.
경쟁이 목적이 아님을 알게 됐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보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나를 마주하는게 퍽 즐겁다.
무너진 날은, 공이 아닌 내가 무너진 날이다.
가끔은 어제의 감정이 그대로 따라오기도 한다.
나는 골프가 좋아졌다.
기술로 다른 사람을 이기기보다
마음으로 나를 이기는 스포츠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가 아니다.
그저 이 경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오래, 더 잘 치고 싶다.
골프는 나의 일상이며,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루는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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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오늘도 동반자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잘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