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꺼내먹고 싶은 즐거운 기억
나는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시절,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스타벅스를 다녔다.
쇼핑에 돈을 쓰는 건 아깝다고 느끼면서도,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언니와 나누는 수다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돈은 정말 잘 쓴 돈이었다.
그 시절 스타벅스는 포인트가 쌓이면 해마다 예쁜 다이어리를 선물해 줬다.
그 다이어리에 일정도 적고, 느낀 점들도 끄적여보고, 책에서 읽은 좋은 문장들도 옮겨 적곤 했다.
그 습관은 호주에 온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한 해를 기록한다. 내게는 ‘보물’ 같은 존재다.
가끔 꺼내 읽으면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때는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고 여겼던 상황이,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미래의 걱정도 지금은 조금은 가볍게 여기게 된다. 기록은 나를 금방 회복하게 해 준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이어리에 골프 이야기가 늘어난다.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 졌고, 사색이 깊어지며 철학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고, 이건 정말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이건 내가 누리는 큰 복이다.
기록은 힘들었던 순간을 ‘과정’으로 남기고, 좋았던 기억은 ‘큰 경험’으로 저장해 준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어떤 기억은 오래 곱씹고 싶어서.. 나중에 꺼내보고 싶어서.
골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정말 즐거웠다.
즐겁게 시작한 일이 나중엔 보람이 될 것 같았다.
즐겨보던 골프 매거진에 언젠가 기고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매주 한 편씩 써보자고 나와 약속했다.
일기처럼 주욱 써 내려가는 글이 아니라, 가독성 있게,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때로는 지인들에게 글을 선물했고, 엄마에게 보여줬더니 댓글로 응원을 듬뿍 받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쓴 건 아니었지만,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기쁨이었다.
요즘처럼 햇살 좋은 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볕이 뺨을 스칠 때.
그때 그 순간은 항상 너무 좋아서 꼭 글로 남기고 싶다.
글로 기록하면 더 오래 머물고, 더 깊이 남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다음 주말을 기대하게 만들고, 평일마저 설레게 만든다.
오늘은 골프도 잘 쳤고,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공을 치고, 날씨마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이런 날은 흔치 않다.
기록해두고 싶었다.
결과가 좋아서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기쁜 건 그간의 과정이다.
먼 홈코스, 매주 함께 치는 사람들과의 거리감, 발전 없는 스코어, 연습할 시간 없는 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장은 좋았고, 사람들과 쌓인 정도 많았다.
그래서 옮기기까지 망설임이 많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고민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가까운 거리, 연습하기 좋은 환경, 다시 만날 좋은 사람들..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 과정을 견디고 나니, 오늘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좋은 날의 공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 리듬, 내 스윙, 나와 동반자의 간격, 날씨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지니
‘아, 지금보다 어떻게 더 행복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행복이 넘칠 땐 꾹 담아두기보다 살짝 흘려야 한다고 믿는다.
옆 사람에게 묻어나고, 기운을 나눌 수 있게.
그래서 이 글을 남긴다.
나중의 내가 꺼내어 읽으며 커피와 디저트처럼 문득문득 꺼내먹을 수 있도록.
이런 하루를 위해 수없이 연습했고, 내 마음을 다독였고,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해 왔다.
지금은 좀 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이 ‘기록’이라는 행위는 참 고맙다.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왜 그땐 이렇게 잘했는데 지금은 못하는지, 혹은 반대의 상황에서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기도 한다,
이 성스럽고 만족스럽고, 행복이 찰찰찰 흘러넘치게 만드는 기록이라는 행위는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좋은 루틴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