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골퍼
서핑을 취미로 삼았던 예전엔 몰랐다. 비 오는 날이 이렇게까지 허전할 수 있다는 걸.
보슬비였다면 어떻게든 라운딩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하루 강수량이 20~30mm가 넘는 날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골프장이 먼저 연락을 준다.
“오늘은 코스를 닫습니다.”
어제도 단 13명만이 필드를 밟았고,
오늘 새벽엔 빗소리가 커서 잠이 깰 정도였다. 새벽 5시, 골프장에서 문자가 왔다.
아, 그렇구나. 그저 그렇게 다시 눈을 감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 마음은 허전했다.
주말을 위해 그렇게 최선을 다해 평일을 버텼는데, 이틀 내내 라운딩이 취소되다니.
그래도 일 마치고 평일 저녁마다 부랴부랴 연습하고, 두어 번 필드도 나갔던 걸 생각하면 ‘통탄스럽다’까진 아니었다. 그저 아쉬운 정도.
비 오는 날의 정적, 그 허전함 속에서 문득문득 스며드는 작은 생각들.
그리고 반려견 보바와 함께 보내는 48시간.
보바도 평소보다 편안해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오롯이 보바만 바라본 시간이 얼마 만인가 싶다.
이 주말은, 그냥 보바에게 쓰기로 마음을 바꿨다.
요즘 나는 너무 골프에 몰입해 있었다. 보바에게, 집안일에, 나 자신에게도 무심했다.
비를 피한 따뜻한 집 안에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둘 해치웠다.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사진도 정리하고, 오랜만에 드립 커피도 내려 마셨다.
그러자 오히려 이 하루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 한켠은 여전히 움직인다.
“인도어라도 갈까? 숏게임이라도 해볼까? 잔디 얼마나 촉촉할까?”
몸이 근질근질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골프를 기다리고, 골프를 사랑할까?
이건 단순한 취미가 아닌 것 같다.
라운딩을 못 하니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골프는 아마도 내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온전히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내 마음의 상태, 습관, 루틴, 욕심, 성장을 다루는 시간.
지인들과 나눈 카톡도 온통 골프 이야기였다.
“이럴 땐 그냥 레슨이나 받을까?”
“우기 시즌 너무 싫어.”
아무리 못 나가도 결국 우리는 골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퍼터를 들고 연습매트에 올라온 보바랑 공놀이도 해보고, 빈 스윙도 몇 번 해보고, 괜찮은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며
어쩌면 나는 지금도 티샷을 위해 티를 꽂고 있다 마음만은.
비 오는 날, 내 마음은 여전히 골프장에 있다.
하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타자를 두드리는 이 창가의 시간도 결코 헛되지 않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또다시 바깥으로만 향했을 거다.
보바는 외로웠을 것이고, 집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커피도 대충 사 마셨겠지.
이 비가, 오히려 내 삶을 정돈하라고 기회를 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쉬는 법’을 잘 모른다.
라운딩을 하지 않는다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뭔가를 배우고, 집안일을 하고, 뭔가 해야만 하는 사람.
낮잠 자는 게 어색해서 하루 종일 뭔가에 집중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 나에게 이런 ‘멈춤’은 나침반 없이 떠다니는 배 같은 감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골프에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잘하고 싶다.
근데 왜 잘하고 싶을까?
내가 잘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인정해 주니까?
내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수능처럼 목표가 명확한 것도 아닌데, 이토록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아마 오늘은
내 멘탈 상태가 어디에 가 있는지,
골프에 대한 내 태도가 어떤지,
몰입의 방향과 목적은 무엇인지,
‘잘하고 싶은 욕망’이 진짜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날인 것 같다.
비가 내리는 창문 앞에서,
골프를 치지 못하는 이 허전한 주말이
나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