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골프가 즐겁지 않았던 이유

내가 골프를 치며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

by Even today


이건 현타가 온 건지, 잘 모르겠다.

골프라는 게 내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게임 방식을 이해하고 상황을 읽어야 하는 종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자꾸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고 정석대로만 하려 한다.


플레이할 때는 손목이 어떻고, 인아웃 궤도가 어쩌고, 숏게임에서는 스핀을 먹이고 줄이고 굴리고, 내리막 라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머릿속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어떻게 쳐야 하는지는 아는데, 그걸 계산하며 치려니 몸이 굳고, 겁이 난다. 연습한 만큼 나오지 않는 순간이 많다.


프로들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하지만, 연습 안 하는 아마추어들과 비교하면 고작 몇 타 차이일 뿐인데도 이렇게까지 몰입해야 하나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툭툭 굴리듯 치면서도 보기 플레이를 해내는 걸 보면, 기술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20년 넘게 쳐서 ‘잔디밥 먹은 사람’이 되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예쁘고 야무지게’ 파를 하고, 버디를 하고 싶다. 굴리고 또 굴려서 안전하게 파를 하는 게 싫은 건, 아직 욕심이 많고 혈기왕성해서일까.


이왕 할 거면 잘하고 싶고, 잘하는 단계에서도 또 더 잘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삶의 활력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바뀌는 느낌이다.

한 타에 몇억이 걸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하고 스스로를 옥죄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또 잘하고 싶은, 웃긴 무한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내 습관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주 3회 라운딩이 어렵지 않다. 연습장 대신 매일 잔디 위에 서다 보니, 매번 컴페티션으로 성적이 업데이트되고, 그게 곧 내 기분을 좌우했다.

이건 일이 뜸해졌을 때 생긴 과열된 루틴이었다.


그래서 라운드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목·토·일만 치고, 나머지 날은 라운드는 금지.

연습은 원하면 가되, 플레이는 제한.


남는 날엔 체력을 더 키우고 싶어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심적인 변화는 컸다.

골프에 과하게 쏠려 있던 감정이 풀리고,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라운드를 쉬는 날엔 헬스 외에도 그동안 미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밥을 해먹고, 집을 정리하고, 스케줄을 다듬는 일들.

라운드 한 번에 5~7시간이 사라지니, ‘일하지 않는 날’에도 결국 밖에서 일하는 날처럼 에너지가 고갈됐다.

그래서 정작 내 삶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휴대폰만 붙잡고 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니 삶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집도, 차도, 일정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스코어까지 나쁘면, 정말 최악의 하루였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정말 내가 골프를 치면서 얻고 싶은 건 뭘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자존감’이었다.

원할 때 시간을 내고, 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열정’이라는 이름의 증거.


나는 여전히 잘하고 싶다. 그러나 즐기고도 싶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품은 사람들을 보면 참 멋지다.

그들은 맥주 한 잔에 웃고, 벙커에 빠져도 농담을 주고받는다.

“야야, 저기 벙커 안에 있어~” 하며 웃고, “어프로치 스핀 어떻게 그렇게 먹여?” 하며 진심으로 감탄한다.

직업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골프’라는 한 가지로 진심인 사람들.

그 시간들이 나에겐 세상 무엇보다 빛난다.


그 안에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게 있다.

그래서 때로 스코어에 집착할 때 스스로가 낯설다.

성적과 기쁨을 저울질하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저울이 조금은 수평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남과의 비교에 익숙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제보다 나은 나’를 인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골프 덕분에 행복했던 날이 훨씬 많았다는 걸 잊지 말자.

그 좋은 기억들을 기록하고, 마음속에 예쁘게 보관하자.


한 라운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한 나만의 작은 규칙 —

예쁜 사진 세 장 찍기, 잘한 샷 한 가지 기록하기, 목표를 과정으로 바꾸기.

그런 루틴을 만들어야겠다.


앞으로는 스코어를 목표로 삼되,

라운드는 주 3회로, 동반자는 ‘편안한 사람들’로.

인정욕구 대신 따뜻한 웃음이 오가는 사람들과.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퍼팅그린을 바라보며,

티오프 전 공을 닦고 레인지파인더를 준비하던 그 설렘처럼.

끝나고도 마음이 편안한 라운드를 하고 싶다.


가끔은 골프를 안 하던 시절이 그립지만,

그때는 이 기쁨을 몰랐다.

골프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줬다.

직종도, 나이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 ‘순수한 열정’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점이 되어줬다.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건, 내가 여전히 뜨겁다는 증거다.

그러니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자.


골프 스코어를 내 이름표나 자존감의 증표로 여기지 말고,

그저 오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자.

‘잘하겠다’보다 ‘즐기겠다’고 속으로 먼저 말하자.


스코어와 햇볕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균형을 배워가고 있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는 마음,

그 둘을 모두 존중하며.

목요일 연재
이전 20화골프 연습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