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계, 골프의 사계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by Even today



골프는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계속된다.

봄이면 나비나 날아다니는 꽃내음을 맡으며, 호주의 벚꽃이라 불리는 자카란다 꽃잎을 보며 골프를 친다.

여름이면 서머타임 덕분에 일 끝나고 9홀을 돌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가을이면 나뭇잎 떨어지는 청량한 하늘 아래에서,

겨울엔 한낮의 살랑거리는 햇살을 느끼며 공을 친다.


계절이 바뀔 무렵엔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여름엔 풀내음이 가득하고, 겨울엔 어딘가에서 장작을 태우는 듯한 냄새가 난다.

골프장에서도 그 냄새를 늘 느낀다.

여름엔 그늘의 서늘함이 감사하고, 겨울엔 볕이 볼을 간지럽히는 햇살이 고맙다.


그 애매한 온도가 꼭 나 같기도 하다. 식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

요 몇 달 너무 연습을 많이 했고, 머릿속에 정보가 너무 많아서 실력이 오히려 안 나왔다.

당연하다. 연습하고 있는 게 있으면 실제 게임에서 잘 안 나오는 법이니까.

그랬더니 어느 순간 열기가 확 식어버렸다.

‘잘한 만큼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짜증으로 바뀌었고,

머릿속에서 그걸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여전히 골프는 치고 싶은, 그런 애매한 온도다.


한 달 전만 해도 하루라도 클럽을 안 잡고 공을 안 굴리면 불안했는데, 요즘은

골프장에서 하늘을 보며 ‘아, 하늘 정말 푸르다’, ‘구름 한 점 없네’,

‘구름이 너무 많은데도 너무 아름답네’,

‘사람들이 참 예뻐 보인다’ — 이런 생각을 한다.

클럽과 조금 떨어져 있으니 사람이 서정적으로 변한 걸까.

열정이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숨 고르기’를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봄의 골프는 집착,

여름의 골프는 열정,

가을의 골프는 욕심과 성찰,

겨울의 골프는 쉼과 휴식.

지금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예전엔 스코어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지만,

이젠 ‘좋은 나’가 먼저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공을 잘 쳐도 내가 즐겁지 않다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뜨거움보단 따뜻함이 필요하다.

지속될 수 있는 온도, 나를 태우지 않는 열정.

골프도, 삶도 늘 그렇다.

너무 몰입하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은 거리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늘 따뜻하기만 해선 안 된다.

뜨거움이 있다는 건 여전히 ‘열정이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불태울 땐 또 불태워야 한다.


지금 호주의 여름은 열정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중이다.

10월 첫째 주 월요일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돼,

겨울보다 2시간이나 더 해가 떠 있는 호사를 누린다.

3시나 4시에 골프장에 도착해도 18홀을 돌 수 있고,

6시에 마쳐도 9홀은 거뜬히 돌 수 있다.

일명 ‘트와일라잇 골프’라고 한다.


프로샵에서 3시 반쯤 9홀을 계산하면 해 질 때까지 칠 수 있다.

직원들은 6시에 퇴근하고, 마음만 먹으면 18홀을 9홀 가격에 도는 셈이다.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불법이 아닌 리걸한 호사다.


오히려 여름엔 11시에서 3시가 가장 더우니

덜 더운 시간대에 와서 즐기는 이 제도는

정말 열정적인 골퍼들을 위한 것이다.


호주의 11월, 초여름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중이다.

이번 여름이 끝나면 또다시 계절이 바뀌겠지만 또 한계절이 지나고, 또 지나도

나는 여전히 골프장 어딘가에 서 있을 것이다.

조금은 덜 뜨겁게, 하지만 여전히 진심인채로 말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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