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연습하던 나는 안되고, 오늘의 나는 됐다.

누적된 시간의 보상, 4개월만에 다시 만난 싱글스코어

by Even today

너무 즐겁고 허무하기도 한 날이었다.

호주의 여름, 흐리고 비 올 듯 말 듯한 날씨는 골프 치기 최고다.

한 달 내내 주중 5일을 12시간씩 일하며 고단한 나날을 보냈고,

주말에는 골프 치고 푹 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루틴이었다.


새로운 코스를 내 홈코스로 등록한 지도 어느덧 4개월.

적응이 안 돼서인지, 공략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전 코스가 정말 쉬웠던 건지

그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연습공을 많이 쳤다.

못해도 보기플레이어였던 내가 이제는 ‘보기만 쳐도 다행’일 정도로 무너졌다.

연습은 더 많이 하고, 클럽도 피팅까지 해가며 바꿨는데도 말이다.


연습할 여유가 사라진 요즘, 새벽 티오프 전에 잠깐 30분씩 몸을 푸는 게 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연습으로 오히려 더 잘 치기 시작했다.

15오버, 13오버, 10오버… 그리고 오늘 갑자기 7오버.

내 베스트는 2년 전의 8오버였는데, 오늘 기록을 갈아치워 버렸다.


처음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죽어라 연습할 땐 안 되더니…

연습 한 번도 안 한 이번 주에 왜 이리 잘 맞지?

연습이 부질없는 건가?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건가?”


하지만 곧 생각이 정리됐다.

한 발짝 더 뛰기 위해 필요한 연습들을, 나는 이미 다 해놨던 거다.

그리고 골프를 칠 수 있는 주말 자체가 고마워서

마음이 편해진 덕에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비로소 내 것이 되어 나온 거겠지.


골프는 정말 애증이다.

어떤 기술은 죽어라 연습해도 도통 안 되고,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단 한 홀의 미스로 점수가 확 무너질 때가 있다.

그 충격이 다음 샷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세 시간 연습으로 되는 거라면

프로들은 전부 언더10 칠 거다.


프로들은 퍼팅장만 2~3시간씩 잡는다.

나는 샷·어프로치·퍼터 다 합쳐 30분 찔끔찔끔 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적 향상을 바라는, 아주 놀부 심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게 좋았다.

날씨도, 동반자들도, 공의 흐름도, 템포도.

좋은 샷엔 서로 진심으로 기뻐해줄 줄 아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했다.

럭키도 있었고 언럭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았다.

전반 끝나고 “언니 쓰리 오버예요”라는 말에 잠시 긴장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잘 해냈다.


연습을 못 해서 자책했고,

너무 바빠 골프에서 멀어진 것 같아 불안했는데

오히려 그 사이에 몸이 조용히 더 가까워져 있었다.

좋은 마음가짐과 긍정적인 흐름이 겹치며

쌓였던 연습들이 폭발적으로 나와준 날.


바쁜 삶이 내게 뜻밖의 베스트 스코어를 만들어준 셈이다.

흔들리고 휘청거렸지만 멈추진 않은 덕에 얻은 결과.

그것만으로도 다음 한 주를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골프는 연습의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을 쌓아두고 나중에 과실로 돌아오는 저축 같은 존재다.

한 만큼 늘지만, 그게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한 달의 바쁨 끝에 찾아온 하루의 기적이 너무 소중했다.


4개월 동안 헤매다 첫 싱글을 쳤다는 사실도 너무 기쁘다.

계속 싱글을 쳤다면 오늘 같은 기쁨은 없었겠지.

바닥을 오래 헤엄치다 보면 위만 보이게 되고,

‘더 내려갈 곳은 없다’는 오기가 생긴다.

잘할 때의 기억이 있는데 못 치니까 더 화나고 짜증났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오늘 같은 아드레날린 폭발을 느끼려고

그동안의 고생을 버텼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 약간 변태인가?


평일엔 골프 생각할 틈도 없이 일하고,

주말에는 일 생각 다 던져두고

골프 친구들과 공 치고, 맛있는 거 먹고, 조금 더 연습하고…

이 루틴이 너무 보람찬 하루였다.

이런 날을 겪으면 골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록을 봐도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버디 2, 보기 9, 파 9. 더블 하나 없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성.

프로가 아닌 이상 매일 연습할 순 없다.

그러니 연습이 부족했다기보다

그동안의 것들이 이제야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힘들게 살아낸 시간도 보상받고,

힘들게 쌓아온 연습도 보상받고,

그런 일주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최고의 순간은

내가 조급하고 결과만 바라볼 때 오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때 리듬이 착 맞아떨어지며 찾아온다.


준비는 해 두되, 급하지 않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

또 한 번, 골프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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