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4년제라는 편견
그래, 나는 전문대 출신이다. 그게 뭐 어때서.
전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결국 훈장이 되었고, 그때 시작한 진짜 공부는 내 인생을 바꿔놨고, 두 번째 스무 살인 마흔의 나는 그때 그 전문대의 도움으로 여전히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애매한 성적으로 대학 진학이 어중간해진 나는 결국 전문대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보란듯 학기초부터 장학금을 휩쓸기 시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중고 12년 동안 한 번도 반장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내가 부과대까지 하며 생에 없을 것 같던 대학생이 되었다.
전문대면 어떤가. 배우는 중국어가 너무 재미있었고, 실력을 인정받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원어민 교수님과도 제일 많이 의사소통을 하니, 동학들의 부러움도 샀을 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여간 직장생활을 한 후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거기서도 나는 명문대 중문과 재학생들과 함께 고급반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 계기는 지금까지도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처 : 픽사베이)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무역회사에 취업한 나는 다른 명문대를 나온 입사동기들보다 중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여 전문대에 대한 자신감이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거래처 직원들도 나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해서, 퇴근후에는 과외수업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하였다. 중국어는 이렇듯 나에게 새로이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알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사실 나는 늘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딸이었다. 공부 잘하는 딸이 아니라는 건 그저 부모님께 늘 죄송스러운 맘을 갖고 살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대학 진학 이후에 새삼스레 자신감 가득 찬 모습으로 장학금을 받아오는 딸이 된 것이다.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금 새록새록 생겨났다. 전문대면 어떤가. 남들이 4년 동안 배울 내용을 2년동안 집중해서 열정적으로 배우니, 4년제 대학생 못지않게 중국어를 잘하게 되었는 걸. 그러면서 갖게 된 새로운 경험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건 진리였다.
전문대 나오면 인생 포기하는 것처럼 안쓰럽게 여기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가기전, 사실 난 독특한 경험을 하였다. 재수학원 대신 영어,일본어,중국어 학원과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영어학원에서 한 휴학생 언니가 “애니, 너의 전공은 고졸이야. 니 인생에서 대학 캠퍼스를 밟을 일은 없을거야!!” 그 한마디가 자극이 되었을까. 전문대라도 가고 싶었다. 아니, 전문대여야했다. 그렇게 중국어를 반년간 배우고 들어간 전문대였기에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스무살에 아니 스물한살에 회복이 되었다.
전문대 중국어과를 졸업해서도 취업이 되고, 진급을 하고, 결혼을 할 수 있다.
대학이 4년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인서울 대학이나 SKY만 있는 게 아니라는 평범하지만 잊혀진 사실을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들이 깨닫게 되었음 좋겠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중심을 잡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전문대는 안된다가 아니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해주는 것.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잘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전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난 4년제가 아닌 전문대에 아이가 좋아하는 전공이 있는 것을 믿고 응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하나의 목표인 대학입시가 아닌, 유럽에서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우리 시대에 부모들이 달라지면 우리 아이들도 달라질 것이다. 더이상 획일화된 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나의 진짜공부는 스무 살에 시작되었고,
두번째 스무 살을 넘기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엄마의 20년이 마칠 때쯤 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