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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Dec 22. 2023

여자나이는 크리스마스케이크와 같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 맘에 들면
집에 안 들어와도 돼~

소개팅을 나가는 나에게 엄마는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 나이 스물여섯, 아버지 환갑을 하루 정도 앞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그야말로 하루하루 신나고 즐겁게 살고 있던 나와 달리,

부모님은 이제 결혼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1970년대, 본인들이 20대에 결혼을 하셨기에, 7년 만에 얻은 큰 딸도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 넘었을 뿐인데, 여기저기 소개팅 ('맞선'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자리를 주선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여자나이는 크리스마스케이크와 같다.

25일이 되기 전, 23일, 24일 누구나 다 크리스마스케이크를 사려고 안달이 나 있지만,

아니 25일까지어도 크리스마스 당일이기에 크리스마스케이크를 사려한다는 것.

하지만 26일이 되면? 진짜로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케이크를 찾지 않는다는 것.


스물일곱 되던 때에는 윗 말씀에 덧붙여 20대에 'ㅅ' 들어가는 나이까지가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울 때라시며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까지가 제일 예쁠 때라며, 스물여섯 살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때는 결혼을 했으면 좋았었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시기에, 난 웃으며 대답을 해드렸었다.


"아빠, 난 스물 일 곳 할래요. 스물여 덧, 스물아홉으로 진정한 인연 만날 때까지 기다리며 즐기며 살래요."


아버지는 그 이후로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아버지 칠순여행까지 함께 하고

그다음 해에 극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스물여섯에 만난 그 남자는 물론 아니다. )


결혼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만,

단순히 부부관계를 맺는 것 이상으로 결혼은 한 사람과 한 사람, 한집안과 한집안이 만나야 하는 일이기에 그냥 결혼할 나이가 돼서 결혼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가치관이나 인생관에 맞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은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마음이 끌린다는 것,

어떤 사람의 마음의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앞장서서 거침없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 소노아야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결혼도 출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구약성경 가운데 이에 관한 훌륭한 구절이 있어 소개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코헬 3,1-8)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그와 함께 갔던 어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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