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드시면서 아들과 손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고 느껴지셨는지 부쩍 목욕탕 한번 가자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아버지와 유년시절 특별한 추억 하나 없었던 신랑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던 어느 날, 신랑도 아버지 모시고 한번 다녀와야겠다 했다.
신랑이 어릴 때, 아버님은 그야말로 호랑이 중에 제일 무서운 호랑이셨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은 지인분들과 한잔 걸치고 오시는 날에는 집에 오자마자 뭐가 그리 못마땅하셨는지 소리를 지르시고 물건을 던지기가 일쑤였다고.
그래서 어머님은 아버님이 집에 들어오시는 기척이 있으면 신랑과 시누와 함께 자는 척할정도였다고 하니 안 봐도 상상이 될 것 같다.
2020년대에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아버지가 집집마다 심심치 않게 있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렇게 신랑이 고3이 되던 어느 해에도시아버님은 신랑이 가고파 하던 미대는 극구 반대를 하셨고, 신랑은 관심도 없는 토목공학과에 입학.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랬던 아버지였기에 어릴 때 아버지와 목욕탕 한번 가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제안은 낯설고 어색했을 것이다.
심지어 손주까지 함께하자는 제안은.
그렇게 호랑이 같던 아버님은 여든이 넘으신 지금은 종이호랑이가되었고, 이제는 혼자서는외출조차 힘드신 상태가 되셨다.
서른일곱, 마흔한 살의 나이에 만나 결혼할 당시 양가 어르신이 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신랑한테 자주 이야기를 한다.
살아계실 때 최대한 자주 찾아뵙고,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자며.
그렇게 아버님 소원대로 三代가 함께 세 번째로 목욕탕을 다녀오신 날,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이제 사우나는 오늘로 끝이다
거동이 전과 같지 않으시니, 앉았다 일어났다가 힘드셨을 거고, 아들과 손주를 잡고 이동하시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도 느끼시는 바가 많으셨을 테고.
신랑도, 아들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연로한 모습에 적잖이 마음이 씁쓸했던 것 같다.
이제 아버님을 모시고 사우나는 함께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시간 되는대로 짬짬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