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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Jan 15. 2024

엄마, 자고 갈게요

열한 살 아들의 외침

지난 토요일  늦은 새해인사를 드리러 아들과 친정에 갔다.

신랑은 시아버님 모시고 병원 일정이 있어 각자 부모님께 충실하자는 명분아래.


산타할아버지께 크리스마스선물로 받은 게임기를 들고 간지라, 다양한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게임을

할아버지랑 한판, 할머니랑 한판, 이모랑 한판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맛있게 저녁을 먹고, 또 게임을 하고. 할아버지 방에 꽂혀 있는 브리태니커 만화사전도 실컷 보고.


그리고 어제 집에 가자 하는데, 이모가 이야기한다. (동생네랑 친정부모님은 한지붕 아래다)


태봉인 자고 내일 이모랑 가자


순간 다같이 정적.

태봉이로 말할 것 같으면, 태어나서 열한살이 된 올해까지 한번도 엄마랑 떨어져 자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집에서도 우리 셋 (아빠, 엄마, 태봉)은 같은 방에서 같이 잔다.

엄마 팔에 있는 볼록 튀어나온 점을 만지며.


과연 태봉이의 대답은?

그래, 이모랑 자고 내일 가자


두둥~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언젠가는 엄마랑 떨어져 자는 날이 오겠지 했는데, 십년을 키우고 바로 이렇게 올 줄이야.

그렇게 아들을 친정에 두고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발길이 안떨어진다. 금새라도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엄마 가지마~" 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태봉이는 감감 무소식.


이렇게 독립이 되는구나. 스무살이 되어 독립한다고 나가면 무척이나 서운할 것만 같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앞 카페에서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

태봉이에게 문자 한 통 없다. 기분이 묘하네.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이런 허전함이라니.


태봉이가 좋아하는 내동생이기도 하는 아이의 이모는 아들과 띠동갑. 나랑은 연년생이지만, 그녀에게는 사춘기 중딩 딸이 있다. 마냥 상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꽁냥꽁냥 함께 하는게 많았는데, 중학생이 될 즈음 사춘기에 들어서서는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내동생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꽁냥꽁냥한 나의 아들 태봉이에게서 그 허전함을 달래는 것일까. 열한살 아들에게 세상 좋은 이모다. 엄마보다 무서울때도 있지만, 엄마보다 잘 놀아주는 이모. 그 이모 덕분에 아이가 오늘 큰 용기를 내었다.

내동생 고맙고, 내아들 대견하다.

오늘 만난 아들은 그 어느날보다 더 애틋하다.

작은 용기를 내준 너를 엄마는 매일같이 응원할께.


추신 : 아들이 엄마랑 떨어져 해보고 싶었던 것은 이모랑 밤새기였다고. 밤 열두시까지 사진 속 저 모습으로 만화책을 보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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