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젊은 작가들이 쓴 책들은 장르불문하고 뻔한 이야기, 다 아는 내용이라며 (젊은 작가님들 죄송합니다^^;;) 한 페이지도 들쳐보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생각을 바꾸어 동기작가님들이나 책 좋아하는 나를 아는 찐친들이 추천해 주시는 책들 중에 80대 아버지께서 좋아하실만한 책은 무조건 아버지께 선물을 드린다. 먼저 읽으시고, 먼저 읽으시며 밑줄 좌악좌악 그어주시고, 끄적끄적 메모도 기대하면서.
이번 책은 그래서 선택한 박완서 님 책.
역시나 취향 저격이었다.
그냥 선물드린다 하면, 책 사는데 돈 많이 쓴다고 하시니
당첨의 여왕이라, 서평단 당첨되었다고 하얀 거짓말로 서평을 부탁드린다.
이메일 쓰시는 것 알려드리고 이메일로 부탁드린다 했는데, 이렇게 친필로 빼곡히 적어주셨다. 동생 편에 카톡으로 전달받았는데 순간
부지런히 책을 읽으셨을 아버지와, 딸의 서평 부탁에 열심히 써 내려가신 글을 보며, 읽으며.. 가슴 한편이 짠해왔다.
80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그 연대에 슬기롭고 바르게 살아가시는 아버지께 앞으로도 서평단 책은 계속 배송될 것이다.
수록된 46편에서 보여주는 생활 주변과 가정살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쓴 많은 소설 작품과는 달리 그를 훨씬 더 근접하여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너무도 많이 닮아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하물며 그의 외모마저 약간은 시골스럽고 수더분해 보여서 옆집 아줌마와 같은 편안함이 베여있다.
그녀 스스로도 딱 바라진 서울뜨기도, 그렇다고 시골뜨기도 아닌 얼치기로서 어수룩함을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여덟 살 이후로 시골 고향을 떠나 이후 대부분의 세월을 서울에서 살았으면서도 조금도 영악스러워지지 못하고 그러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품성이 모질지 못한 탓이리라.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오히려 그에게 빨려 들게 만들어 함께 동조하고 맞장구치고 대화를 나누며 위로 같은 것들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거의 다 섭렵했으니, 이것도 그와 통하는 어숙룸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 묵은 일반주택에서 고령의 시어머니와 남편과 자녀들을 함께 모시고, 어떻게 챙기고, 가르쳤을까. 보통스럽지 않은 환경인데 하물며 그 와중에 어떻게 글을 쓸 요량까지 했을까. 그의 말대로 차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결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이 들어가면서 여가시간이 생기면 누구든지 글 한번 소신껏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잠깐이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시골생활을 겪어온 세대들이라 작가가 상기시키는 낙엽과 청솔가지 땔감, 송진 냄새, 부삽으로 붉은 잿불을 화로에 옮겨 담고 쪼이던 그 이야기는 가슴 짜릿한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지독한 부자도, 지독한 가난도 혐오스럽다는 얘기에도 공감이 간다. 부자는 제쳐놓더라도 그 어려운 시절, 우리 모두가 겪던 지독한 가난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내 자녀에게만은 기필코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교육 강국을 만들지 않았는가.
내 자녀들이 더욱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가르치려 하고 자식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강요에 가까운 요구를 함으로써 사랑을 무게로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극성 부모와는 달리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통스럽게 사는 것만으로도 떳떳해한다.
작가 역시 자녀에게 사랑의 무게를 지우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그 역시 보통 부모이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자연스럽게 커가기를 바란다. 공감이 간다.
그의 나이 70,80대일 때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회한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허락된 마지막을 쇠잔해 가는 가을과 함께 하고 싶다는 여성스러운 마음 또한 애잔하다. 결국 그는 먼저 간 남편과 아들을 그리며 담담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