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바리스타

가족과의 시간

by 섬세한 시골 의사

경상도 부모님들은 무뚝뚝하다. '잘했다'가 아니라 '자만하지 마라'라고 하고, '이쁘다'가 아니라 '더 이쁜 것 많다'라고 한다. 밥 먹을 땐 밥만 먹는다.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게 막 어색하고, 낯설다.

부모님 두 분이서 밤낮으로 일하며, 자식들을 키워온 탓에 나는 가족여행이란 것도 성인이 되어서 처음 가보았고, 그마저도 대화가 거의 전무한 여행이었다. 다른 집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는 시내버스 운전을 오래 하셨다. 운행을 마치고서, 150원 넣고 뽑아 먹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이 휴식이었다. 하루에 두 세잔 씩 뽑아마시는 자판기 커피는 아버지의 소소한 행복이었으리라.


'요즘은 커피집 커피가 4천 원씩 한다매?'


아버지는 커피가 몇 천 원씩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이 안되시나 보다. 하긴, 우리 가게에 있는 작은 커피 자판기에 버튼만 누르면 따뜻한 커피가 나오니 그렇게 생각하실 법하다. 몇 년 전까지도 살아생전 카페라곤 가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먹고살기 바빠서 취미가 뭔지도 모르고 사셨고, 그러다 보니 모임 같은 것도 없었다. 어쩌다 가끔 가는 동창회는 저녁시간에 하니, 카페 갈 일도 없으셨단다. 더군다나, 퇴직 후엔 어머니의 작은 식당일을 도와주시는데, 식당 안에 있는 커피자판기 때문에 더더욱 카페 갈 일이 없으셨을 것이다. 친구분이 낮에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하시면, 단호한 어투로


" 그 돈 주고 커피 안 마신다! 우리 가게에서 자판기커피 묵으면 되니까 일로 온나!"


하셨던 분인데, 피치 못할 사정(?) 이 있었는지 , 한 번은 카페에서 친구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카페에 들어가셨다. 빈자리가 곳곳에 보여서 적당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 후 친구분이 오셨다.


"아이고~ 내가 늦어서 미안하데이. 커피 한 잔 먼저 마시면서 기다리지 그랬노~"


곧이어,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가히 충격적..


" 저 싸가지없는 알바 봐라. 손님이 들어왔는데 30분 동안 주문을 받으러 안 온다이가!! 내랑 눈이 몇 번이나 마주쳤는 줄 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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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 일을 어찌할꼬....



다 내 탓이지... 일 밖에 모르셨던 아버지를, 내가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가야 했었는데...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나들이도 한 번씩 같이 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게 왔었다.


좋았어,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가보자. 툴툴거리면서 그냥 집에 있자고 했던 아버지를 억지로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 아부지! 바리스타 자격증 따러 갑시다 "

"그게 뭐꼬?"

"커피 전문가 자격증 같은 건데, 가족끼리 취미 배우러 간다 생각하고 따라오이소, 제가 다 준비해 놓겠심다"

"안 간다! 돈 아깝다! 그런 거 관심 읍따!"


나는 마침 주 3일 페이닥터로 근무하던 기간이었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안 하겠다던 아버지를 억지로, 강압적으로, 꾸역꾸역 설득했고, 어머니, 아버지, 나 이렇게 1달 코스 바리스타 자격증을 배우러 커피 아카데미를 갔다. 선생님은 다행히 우리 세 명만 수강할 수 있는 클래스를 열어주셨고, 가족끼리 나들이 가는 것처럼 매주 2번씩 학원을 갔다.

커피가 궁금해서 배우러 간 게 아니다.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학원 가는 김에 , 같이 외식하는 날도 잦았다. 커피도 배웠으니, 카페 가서 커피 맛을 본다는 명분으로 다 같이 외출도 자주 하고 좋더라.

그런데..! 우리 세 명 중에 아버지가 가장 열정적이었다! 안 간다고~ 안 간다고~ 버티던 아버지의 모습이 며칠 전이었는데 ㅎㅎㅎ 아버지가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 커피 배우러 가는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라테 아트도 아버지가 제일 잘하셨다. 아버지는 재미있으셨나 보다. 아~ 다행이다 ㅠ 이제 아버지는 카페를 가도, 몇 가지 커피 메뉴의 제조법과 맛을 구분할 줄 아신다.


" 요 카페는 카페라테는 있는데 카푸치노는 읍드라~ 만드는 거 별 차이 없는데 할 줄 모르나 보다잉 ㅎㅎㅎ내가 또 카푸치노 자~알 만든다이가 ㅎㅎ 여기서 알바나 시키 달라하까? ㅋㅋㅋ"


그렇게 1달 동안 부모님과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학원을 마칠 때도 커피 얘기를 하다 보니 대화도 많아졌다. 어머니 아버지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셨다! (물론 나도 ㅎㅎㅎ) 여기저기 자랑도 많이 하셨고, 주변 지인들이 '늦깎이 학구열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입에 걸릴 실 정도로 좋아하셨다.


"어이 친구, 커피 전문가라매~ 커피 한 잔 내리주라 ~"


소문을 들은 아버지의 친구분이 가게에 놀러 오셨는데..

"그래 친구야, 내가 바리스타 아이겠나ㅎㅎㅎ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마셔보고 다 해봤다이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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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자판기 커피가 제일 맛있다. 이거나 마시자 ㅋㅋㅋ"


크으~~~ 이 맛이지 !!






< 가족과의 시간을 억지로(?), 강압적으로(?), 꾸역꾸역 (?) 만들어보는 거 어떠세요? 우리도 다시 무언가를 해볼까 하는데 어떤 콘텐츠가 좋을까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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