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엄마vs아빠)(스포 X, 줄거리X)

by 섬세한 시골 의사

설 연휴를 이용해서 정말 오래간만에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갔다. 얼마 전 개봉한 유해진, 유지태 주연의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다. 단종의 유배 생활에 대한 사실과 허구가 섞인 영화였다. 단종의 연기와 그의 상황에 집중하는 관객이 많았다면, 나는 영화에서 대립적으로 나오는 '한명회'와 '엄흥도'에게 감정이 더 쏠렸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엄'씨이고, 어머니는 '한' 씨이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릴 적부터, 조상얘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엄흥도를, 어머니는 한명회를 대표조상(?)으로 꼽으면서, 티격태격하셨었는데, 그게 영화화가 된 게 너무 재밌어서,

' 아! 이건 무조건 어머니 아버지를 영화관에 데리고 가야 된다!!! '라고 생각했다


영화관 가는 길부터 어머니 아버지는 또 티격태격했다.


"한명회랑 세조가 제일 나쁜 놈이데이, 엄 씨 집안이 불의에 굴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

"아이고~ 엄 씨들 생긴 건 다 유해진처럼 생겨가지고~ 그래도 우리 조상은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인데, 엄 씨 집안엔 출세한 사람이 누가 있노 !"


영화 보기 전, 전초전이 꿀잼이다 ㅎㅎㅎ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또 두 분의 티키타카가 기대된다 ㅋㅋㅋ


영화는.. 글쎄?! 적당히 무난하달까? 빵빵 터지는 웃음이 있었다거나, 큰 감동이 있진 않았다. 강추할 정도는 아니고, 티비에서 채널 돌리다가 나오면 볼 정도?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아무튼, 영화가 끝나고

" 아부지, 뭐 영화는 별거 없는 거 같은..." 하면서 옆 자리 부모님을 보았는데

두 분 다 눈물 콧물 다 흘리시면서 펑펑 울고 있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감정이 너무 메마른 것인가? 뭐, 부모님 두 분이 영화를 나름 재밌게 보신 거 같아 다행이긴 하다. ㅎㅎㅎ


영화관을 나와서 아버지께서 꺼놨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아버지 핸드폰엔 친구들의 부재중 전화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자식들이 바빠 설 연휴 때 내려오지 않아서, 친구들끼리 당구나 치러 가자는 전화였다.


"내는 우리 아들 내외하고 영화 보러 왔다 ~ 오늘은 같이 당구 치러 몬가겠네 ㅎㅎ 느그들끼리 놀아라 ~"


전화를 마친 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와서 무심하게 툭 한마디 하셨다.


"고맙다, 아들.. "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죄송합니다. 더 자주 올게요'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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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씨가 전부 유해진 처럼 생긴건 아니에요. 특히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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