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편해진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시내버스 운전하시는 아버지는 명절이나 일요일에도 운행을 나가시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는 식당의 잡 일을 하면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았다. 두 분이 밤낮으로 벌며, 내 동생까지 6 식구가 한 집에 살았다.
형편은 어려웠어도, 부모님께서는 교육열이 높았다. 입시제도니 유명학원이니, 이런 것들을 열정적으로 알아볼 여유는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학원은 어떻게든 보내주셨다. 배우고 싶었지만, 형편 상 배우지 못했던 두 분의 한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름 고등학교 때까지 반 5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수없이 들었던 "좋은 대학 가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말을 믿으며, 입시공부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사범대학을 들어갔기 때문에, 졸업 후 교원임용고시만 합격하면 , 대학의 학점이나 스펙 따윈 아무 필요 없을 거란 생각에 대학시절을 대차게 날렸다. ㅋㅋㅋㅋㅋ 학점은 말할 것도 없고, 토익시험 한 번 친 적 없으며, 자격증도 전무하다. 동아리 활동을 한 적도 없다. 신기할 정도로 대학에서 한 게 없다. 강의시간에 출석해서 몰래 만화책이나 보고 있었다.
아!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나도 비싼 탓에, 나도 나름 성인이 되었다고, 용돈 정도는 벌고 싶었다. 대학기간 내내 매일 저녁마다 술집 서빙이니, 과외니, 배달이니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많은 아르바이트 속에서 누군가는 사회생활을 배우고 경험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뇌가 빈 듯이 , 뭘 배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돈만 들어오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나마 번 돈도 친구들과 논다고, 연애할 때 데이트한다고 다 써버려서 남는 것도 없었다. 지금은 한 달의 최소 한 권의 책을 사서 읽고 있지만, 대학기간 내내 내 돈으로 서점에서 산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으니 말이다.
4학년이 되었을 때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과에서 1,2등을 다투던 애들도 한 번에 합격하기 힘들 정도로 임용고시의 문은 높았다. 재수도 하고 휴학도 했던 탓에, 졸업이 나보다 빨랐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직을 하기 시작했다. 취직한 친구들은 대학생활 동안, 학점관리와 자격증, 영어공부 등 이른바 취업준비라는 걸 예전부터 해왔다는 걸 알았다. 인서울 대학에 갔다는 자부심이 , '나는 뒤처지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의 대학생활이 후회스러웠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을 우리 아들'이라고 뿌듯해하셨던 부모님을 배신한 것 같아 죄책감도 컸다.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늦었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교원임용시험이 아니라, 치과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진로를 바꾼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무튼 치과대학을 가기 위한 나의 고시원 생활은 분명 암흑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것 같았고, 부끄럽지만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삭제하고 싶었다.
몇 년간의 공부 끝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막 입학통지서를 받았음에도 벌써 치과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또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졸업만 하면 치과의사이구나. 전문직이니까 먹고사는 데 걱정 없겠지?? ㅎㅎㅎ
아차!
내가 이러다가 몇 년 전에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았던가...
첫 차를 살 때도,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도, 졸업 후 진료를 시작할 때도, 공부가 필요하다. RPG 게임할 때도 공략집부터 보잖아! 공부라 하니, 고3입시 공부라고 느껴지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에게 공부는 책 한 페이지 읽고, 뭐라도 한 줄 배웠다면, 그게 공부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공부하면서 살아야 될까. 죽기 1초 전까지이다. 그냥 사는 게 곧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끝은 없었다. 대학 가면 끝, 졸업하면 끝, 결혼하면 끝, 이런 건 없었다. 실제로 결혼하고 나니, 여자에 대해 더 공부(?) 하게 되었다.
아니 근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여자는 세상 제일 어렵고 끝없는 공부인 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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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이상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