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 EP 3.

HER Lab 두 번째 연구

by HER Lab

우리는 지난 에피소드를 통해 여적여 자체의 진위가 아닌,

여적여가 작동되어 온 인식의 변화에 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마 EP1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뭐가 달라졌다는 건데?'

이번 에피소드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갈등보다는 연대를 찾기 시작한 여성들


여적여를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던 시대가 점점 저물면서, 여성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과 콘텐츠 소비의 흐름에도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을 ‘본능적으로 서로를 질투하고 경쟁하는 존재’로 전제하던 시선은 점차 힘을 잃고, 여성들의 관계가 다시 정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그널들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곳은 아무래도 콘텐츠 시장인데, 실제로 최근 여성 서사를 다루는 작품들에서는 ‘갈등에서 시작해 연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점점 더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쟁 구도로 출발하지만 결국 여성 간 연대로 귀결되는 드라마 <퀸메이커>와 여성 우정 서사가 강하게 반영된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있다. 이 작품들 속 여성들은 서로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설정되기보다, 각자의 결핍과 상처, 경험을 공유하며 관계를 만들어간다.


P001637397.jpg 드라마 주요 인물들 모두가 여자인 '작은 아씨들' (2022)


그중 드라마 <작은 아씨들> (2022)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주인공, 조력자, 그리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인물들까지 서사의 핵심을 이루는 거의 모든 인물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더 이상 누군가의 서브 캐릭터나 관계의 보조 장치가 아닌, 이야기의 중심에서 서로 얽히고 맞서는 '주체'로 등장한다.


세 자매를 둘러싼 갈등 역시 단순한 ‘여자들끼리의 싸움’으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각 인물의 갈등은 개인적인 감정싸움이 아니라, 각자가 놓인 상황과 선택의 결과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인물 사이 관계는 경쟁을 넘어, 연대와 협력으로 이어진다. 즉, 여성들은 이제 '여적여'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를 벗어나, 서사를 움직이는 관계의 주체로 다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젠, 여돕여의 시대


이러한 변화는 마케팅에서도 분명하게 포착된다. 한때 여적여가 가장 빠른 반응을 만드는 장치였다면,

이제는 ‘여자를 돕는 건 여자’라는 전략이 새로운 선택지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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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Dove) – “Stop the Beauty Test”


도브의 “Stop the Beauty Test” 캠페인은 인도 사회에서 소녀들이 성장 과정 내내 ‘미의 기준’을 강요받는 상황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얼굴과 몸을 성적표처럼 평가받고, 부모와 사회의 시선 속에서 외모 기준을 내면화해 온 현실을 보여주며 “Her face and body are not your marksheet.”라는 설명으로 그 구조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캠페인의 마지막 장면이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미의 기준을 강요받아온 소녀들이 가장 먼저 용기를 낸 한 소녀의 작은 행동을 보고, 함께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는 가능성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누군가를 이기거나 앞서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선택이 또 다른 사람에게 용기가 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때 용기는 개인의 결단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에서 여성으로 전달된다. 사회가 강요해 온 기준에 맞서게 하는 힘이 또 다른 여성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캠페인은 여성 간 비교나 경쟁을 거부할 뿐 아니라, ‘여자를 돕는 건 여자’라는 여돕여의 구조를 서사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운로드.png 2025 MAMA 어워드에서 '뮤직 비저너리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한 '케데헌'


이 같은 흐름은 비단 캠페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간 연대와 협력을 중심에 둔 서사는, 이제 문화 산업 전반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2025년 MAMA 어워드에서 ‘뮤직 비저너리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한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루미·미라·조이로 구성된 3인조 K-POP 걸그룹이 사회적·개인적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이 작품은, 여성 간 경쟁이 아닌 연대를 서사의 중심에 둔다. 각기 다른 개성과 역할을 가진 인물들은 서로를 대체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연결되고 보완되며 이야기를 이끈다.


OST의 글로벌 흥행을 넘어, 이번 수상은 여성 아티스트와 여성 캐릭터, 그리고 K-pop 여성 서사가 하나의 장르적 실험을 넘어 차세대 비전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 연대의 이야기가 더 이상 ‘의미 있는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적 성공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인 셈이다.





이렇게 여적여라는 낡은 시선을 넘어, 여돕여의 서사들은 천천히 자리를 넓혀왔다.

그 이야기들은 경쟁이 아닌 연대의 언어로, 지금 이순간에도 여성들의 관계를 다시 쓰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첫 질문 앞에 선다.

“그래서, 지금은 뭐가 달라졌는데?”


당신의 대답이 이 글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넓어졌기를 바라며,

HER Lab의 두 번째 연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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