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 EP 2.

HER Lab의 두 번째 연구

by HER Lab

ep1에서 우리는 ‘여적여’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실이 아닌 프레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여적여가 프레임이라는 인식이 생긴 이후, 이 단어는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적여를 더 이상 그대로 믿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이 말을 사용한다.
이 모순적인 상태야말로, 여적여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구조화된 프레임임을 보여주는 단서일지 모른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그 프레임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깊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세대별로 여적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그림2.png [최근 1개년 ‘여적여’ 연령별 연관어 키워드]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최근 1개년 ‘여적여’ 연관어 키워드를 연령대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났다.

바로 10대, 20대, 30대 세대별로 '여적여'와 함께 언급한 '연관어 키워드'들이 각각 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10대가 여적여를 언급할 때 함께 사용하는 키워드는 성형, 외모, 연예인, 뒷담화처럼 개인 간 비교와 질투에 가깝다. 반면 20대와 30대는 차별, 젠더, 정치 같은 구조적 이슈와 함께 여적여를 말한다. 30대와 40대에 이르면 팀장, 상사, 조직 문화 등 직장과 사회생활의 맥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히 여적여를 둘러싼 관심사가 세대별로 계속 바뀌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데이터는 하나의 사실을 더 분명히 드러낸다. 여적여는 특정 시기의 감정이나 성향이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다른 모습으로 반복 작동하는 프레임이라는 점이다.


여적여가 프레임임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할까?




여적여, 도구가 되다.


원래 프레임이란 견고한 법. 특히 오랜 기간 쌓아 온 프레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적여가 하나의 프레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 구조가 강화된 과정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특히나 마케팅 영역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여성 간의 비교와 질투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14일 오후 11_15_45.png 2006, 피죤 "몸매는 죄가 없다"


2006년 방영된 피죤의 광고 ‘몸매는 죄가 없다’는 그 대표적인 예다. 같은 옷을 입은 두 여성을 등장시켜, 몸매 차이에서 비롯되는 시선과 질투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광고는 여성들이 서로를 비교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감정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전제된다. 여기서 여성 간 질투는 문제적 감정이 아닌,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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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엠플닷컴 '적들의 쇼핑법'


같은 해 진행된 엠플닷컴의 ‘적들의 쇼핑법’ 캠페인 역시 여성 간 경쟁을 마케팅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했다. 누구보다 친한 언니 동생 사이였던 두 여성이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 앞에서 서서히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은, 여성 소비자들의 쇼핑을 곧 비교와 경쟁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이 캠페인에서 여적여는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공감 가능한 재미로 포장된다. 여성들의 경쟁 심리는 불편한 현실이 아니라,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림2.jpg 2006, 엘라스틴 '질투' 캠페인


엘라스틴의 ‘질투’ 캠페인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전지현의 윤기 나는 머릿결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여성을 등장시키며, 질투라는 감정을 매우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묘사한다. 이때 질투의 대상은 무조건 다른 여성이며, 그 감정은 곧 제품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다. 여적여는 갈등의 이름이 아니라, 구매를 촉발하는 감정적 연료로 사용된다.


이 시기의 광고들은 공통적으로 여성 간 비교와 질투를 설명할 필요 없는 전제로 사용했다.

즉, 이 당시 여적여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움직이기 위한 가장 직관적인 언어였다.




더욱 교묘해지는, 여적여의 언어


시간이 흐르며, 여성 간 갈등을 노골적으로 소비하던 방식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여적여는 더 이상 그대로 꺼내기엔 너무 잘 알려진 프레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적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판을 피해 더 은밀한 방식으로 모습을 바꾸며 살아남았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직접 겨누지 않으며, 구도와 연출, 편집과 대비 속으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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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스프라이트 "선배 이름은 뺄게요"


2016년 스프라이트 광고도 그 은밀한 설계 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여성 간 경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설현과 대비되는 ‘선배’를 굳이 여성으로 설정해 미묘한 비교 구도를 만든다.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여전히 여적여가 서사의 긴장을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7.png 여성 간 갈등을 자극적으로 편집한 예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튜버 찰스 엔터의 모습


2000년대 초반, 2010년대를 지나, 그렇다면 2020년대는 어떨까.


유튜버 찰스엔터의 ‘환승연애 리뷰’ 콘텐츠는 그 단서를 보여준다. 그는 프로그램 속 여성 간의 대화가 본래의 맥락과 달리, 편집과 구도를 통해 갈등처럼 구성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영상 이후에는 “말해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자세히 보니 그냥 대화였는데, 편집으로 여적여가 됐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즉, 이제 여적여는 더 이상 대놓고 말해지지 않는다. 대신 편집과 연출, 구도의 선택 속에서 더 은근하고 은밀하게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여적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들키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여적여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이 프레임은 지금의 여성들을 설명하기에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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