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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웃는 게 예쁘지만, 망가져버린 심장을 가진 여자아이를 아시오?” ​

by Daae

신경정신과와 공부, 오은영 금쪽 상담소 갖은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인격 문제와 심리 문제를 분석하며 종종 들은 내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다. 결국 배려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배려가 필요 없는 때가 오기를.

나는 어릴 적부터 갖은 모욕과 쌍욕과 폭행, 구타, 방임과 멸시하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5 자매였던 나는, 내 아래 동생이셨던 작은 아빠 밑에서 “아이를 주지 않으면 이혼하겠다.” (당시에는 결혼이 필수였기에 이런 협박도 가능했겠지.)라는 말을 듣고 4번째 여자아이였던 나를 그쪽 부모에게 넘겼다고 전해진다. 이게 우리 엄마, 아빠의 큰 잘못이다.

친가 쪽 사정을 들어보면 그리 넉넉지 않았다고 한다. 양반가 김해 김 씨라고는 하지만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 친가 역시 고생하며 지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 시간, 196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생각해 보면 알만하다.)

내가 태어난 날은 1998년 1월 19일 너무나도 시린 겨울이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또 생기자 첫째 언니는 날 귀하게 여기며 업고 지냈다고 한다. 사랑받을 아이였구나…

하나 나는 기억도 못 할 어릴 적에 아기 품앗이를 당했고, 작은 엄마는 나를 키우게 되어 파혼을 면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어렸을 적에 아이들 대부분이 크고 작게 맞고 자랐다고 전해진다. 나와 같은 아이들이 꽤 많은 거 같은데. 우선 나로 말하자면 발바닥 맞기부터 뺨 때리기, 효자손 구타, 밥 먹을 시 독촉을 당했다. 심한 욕설은 안 들었지만 큰 소리와 고함은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서 귀여웠는지 금방 괜찮아졌고 내가 조금만 잔망스럽게 굴어도 가는 절망이었다.

우리 작은 엄마 되시는 분은 좌절에 면역이 없었다. 애정에 목말라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만 때린다… 이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엄마는 우리에게 애정을 바랐다. 내가 뭘 하든 엄마를 찾고 엄마가 만능인 걸 보여주길 바랐던 걸로 보인다. 무심했던 나는 그걸 몰랐고 엄마의 좌절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내가 예쁘게 굴면 풀어지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는 독립심을 가지고 싶었던 아이였으니까.

자세한 학대 내용이다. 트라우마를 주의해 주시길.



문을 닫고 방안에 있었더니, 집에서 나가라며 문을 부쉈다.

코피가 터지도록 주먹으로 맞았다.

정말 어릴 때, 창피하게 내복이 벗겨져 추운 겨울에 내쫓겼다.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고, 쇠파이프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초등학생 때, 공부할 때에도 못하면 매를 맞았다. 매를 맞으며 수학을 풀었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아무것도 못했다. 모욕을 당했다. 온갖 쌍욕으로 겁을 주었고, 소리를 지르면 소리 지르지 말라며 압박했다. 목이 졸린 적도 있다. 그냥, 죽이려는 것 같았다. 이건 살인 미수다. 얼굴이 부어 학교에 갔더니 왜 그렇게 됐냐며 다들 놀랐다. 외모지적을 당하고, 내동댕이 쳐지고, 구석에 내몰려 효자손으로 머리를 맞고.

다섯 살 때부터 벌어진 일이다. 나는 엄마가 차에서 내리라며 날 버리고 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싫어 조금 투정 부렸을 때의 일이다. 엄마의 차 안에는 언제나 효자손이 있었다. 화가 나면 나를 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폭력과 아픈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쏟아도, 쏟아도 그대로다. 그대로. 아파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파도 말할 수 없다. 죽는 것만이 답일까, 싶었다. 너무… 너무… 아팠다.

(공황장애 양엄마 파트입니다)

나는 크게 탈선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문제 있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불안과 통제욕이 심한 그녀에게는 문제아였다. 청소나 정리가 조금만 안되어있어도 매의 폭격이 날아왔고, 난 항상 못된 아이였다. 정서와 몸 모두 피폐한 나날만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술을 사 오라 시키며 온갖 하녀 취급은 다했다. 난 이게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나를 돌봐주는(이런 말 붙이기 싫다.)이의 부탁(협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 왔다. 반동으로 성인이 된 나는 술과 담배가 제일 싫어하는 물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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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당신이 싫었다. 그런 당신을 제일 닮기 싫었고, 아프고 미웠다. 매번 겪는 좌절이 싫었다.

나는 그런 당신을 닮아버렸어. 주변인이 떠나가는 게 싫어서 다 밀어내는 성가신 사람이 되었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기 위해 주변에 가시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어. 나 역시도 받아주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까. 착하고 싶었던 딸이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어.

늘 내면의 어둠과 박살 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웃는 가면과 긍정적인 말투를 습득했다. 나쁜 아이로 보이기 싫어서 온유한 말투와 부드러운 성격을 학습한다.

그러나, 말투와 성격은 학습할 수 있어도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학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소중히 여겨준 적 없는데 어떻게 자신을 소중히 여길까. 그게 날 참 힘들게 했다. 난 분명 착한 일을 했는데 왜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너무 서운했고, 이해가 되지 않아 늘 마음에 상처가 남겨졌다.

결핍된 마음을 숨기려고 쓰는 가면은 부스럼을 만든다. 부자연스럽고 내 것이 아니라서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찾고 싶었다. 눌러온 마음이 고름이 생겨 터질 때까지 그런 나를 덮고 성녀처럼 살고 싶었다. 내면의 상처와 박살 난 사고방식이 터져 병으로 찾아올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사랑에는 불안을 동반한 집착이 포함된다. 우리는 그걸 다스리는 인격을 고결한 인격이라 부르지만 그건 마음에 결핍된 게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모든 사건과 문제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그렇기에 내가 방어기제로 웃는 얼굴과 애교를 장착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 번 폭발한 적이 있으나, 이제는 괜찮다. 상처받기 전에 끊어내고, 이성을 잡아 사랑의 마음을 다스린다. 파도가 휩쓸린 자리는 폐허로 가득하지만,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내가 좋고 싫은 건 내가 정하고 스스로는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내가 만들 것이라 다짐한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또 내가 상처 준 이들을 보살피고 다스리겠다고. 스스로 일어서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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