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것과 선한 건 달라!
잘해준 게 죄인 거라면
꼼짝없이 나 벌 받는 걸까
두 손이 꽉 묶여서
잡지도 못해
(나 좀 봐달란 말야)
꾹꾹 삼켜 체할 뻔했던 눈물이
손 틈새로 자꾸만 빠져나와
참 착하다는 그 말에
보기 좋게 속아서
나 아픈걸
너 때문에
-최예나, 착하다는 말이 제일 싫어
https://youtu.be/Za4RPfkgEGo?si=4A8jhbFLB87oqa6o
나는 착하다는 말을 정말 사랑했다. 그 말을 안들으면,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기도 했으니까.
공부나, 운동… 물질, 지식. 권력… 능력.
내 능력이 안되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타인의 욕망과 명령에 순응하는 “착함”이 편했으니까. 나는 내가 공부에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믿으며, 양부모의 하대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이건 어쩌면 내 잘못이다.
그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그렇기에 쌓인 감정들은 그에대해 보상을 해달라는 듯 내 마음을 고장 냈다.
또, 고장난 마음을 고치려고 선하다는 것에 대해 오래 고민 했다. 교회도 다녀보고, 성당도 다녀보고, 니체의 말로 마음을 달래며 내 아픔을 아물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마음에 들이차는 그들의 보편은 공감이 참 어려웠다. 게다가, 주변 사람도 그다지 그런 걸 잘 지키는 타입의 사람도 있지 않았다. 내가 최근들어 사람을 볼 때, 윤리적 성숙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내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나서 내린 “선함”은 고결하고 무결한 것이 아니다.
선하다는 건, 타인의 욕망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잘 제어하며, 용서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잘 구분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알며, 그로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의 약점을 잘 보듬어 줄 줄 아는 것이다. 스스로의 윤리 의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을 넘어, 타인의 윤리 의식을 보듬는 사람. 그것이 선한 사람이다. 세상과 자기모순을 잘 알고 잘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선함은 단순한 희생이나 순종이 아니라 자기와 타인 모두를 존중하며 보호하는 능력이다.
이제는 착하다는 말이 아닌, 선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