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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Aug 03. 2022

우당탕탕 취준 일기

창작하는 행위에서 위안을 받고 안주하고 있던 건 아닐까? 좋아하는 일 안에서 더 안정적인 벌이를 갖기 위해 분투하던 중 든 생각이다. 어쩌면 뒤늦은 취준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무어가 됐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눈앞에 탐나는 것들에 쉽게 뛰어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생활이 필요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친구들이 한창 취준에 몰두할 때 불안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일들을 차곡차곡 내 것으로 만들다 보면 자연히 즐거운 일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이 있었다. 지금도 그 낙관은 남아있다. 일에서 벌이 이상의 의미를 찾는 한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다만 겁이 조금 많아졌고, 조금 자주 무력에 덮여 지낸다. 일주일 전 즈음 이상하게 목이 칼칼하고 마른기침이 나왔다. 머리도 조금 아픈 듯했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싶어서 조퇴를 하고 자가검사 키트를 사러 돌아다녔다. 하필 집 근처 편의점에 재고가 다 떨어졌고,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가야겠다는 정신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상비약을 털어 넣은 뒤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검사 결과도 음성이 나왔다. 그래도 한동안 목이 아팠고, 머리가 은근하게 쑤셨다. 검사를 다시 해야 하나 싶으면 컨디션이 나아졌고, 일터에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와 꾀병인지 냉방병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최소한의 안정을 챙겨주는 벌이 외에는 도통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그렇다고 애써 만들고도 싶지 않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과 이 상황을 오래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일을 하는 동안 파트타임 이상의 제안을 여러 번 받았지만, 이곳에서 파트타임 이상의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때맞춰 지인에게 어울릴 것 같다며 한 주류 스타트업의 구인공고 소식을 건네받았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이력서를 만들고,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지원을 한 곳에서 인터뷰 제안이 왔고, 생각보다 즐겁게 인터뷰에 다녀왔지만 첫 술에 배부르기가 좀 쉽나. 추가 인터뷰 제안은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높게 사지만 당장 직무에 뛰어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기에 어렵다, 는 말이 주 이유였다. 납득이 갔지만, 납득이 가서 힘이 빠졌다. 관심 가는 회사는 죄다 스타트업인데, 스타트업은 대부분 인원이 적으며 그 적은 인원으로 최선의 효율을 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누굴 가르쳐가며 자리에 앉혀두는 것보다 입사하자마자 바로 직무에 투입이 가능한 사람을 뽑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내가 해온 것은 값진 경험이지만, 당장 쓰일 수 있는 경력이 되기에는 어렵다. 내 경험이 경력인 곳에 가려면 파트타임뿐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로는 다른 곳에 지원할 준비를 하면서도, 몸은 좀처럼 따라주지를 않아 며칠을 내리 쉬었다. 유튜브 촬영을 해야 했고, 뉴스레터용 음성 녹음을 해야 했지만 허스키해진 목소리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일터에 나와서도 영상을 여러 개 틀어두고 번갈아 보기를 반복했다. 막연은 사람의 하루를 너무도 쉽게 갉아먹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긴 시간도 아니지만 취준을 하는 동안 모델이라는 직업을 꽤 많이 내려놓았다. 이 일을 더 이상 내 첫 번째 일로 두지 않아도 충분히 짬을 내 즐길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 편이 되려 스트레스 없이 오래도록 모델을 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갔다. 하고 싶은 촬영도 이제는 많지 않은 것 같고, 모델로 돈을 더 이상 못 벌게 되어도 크게 속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직업적 명예나 욕구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걸까, 모델 일에 관한 미련을 많이 내려놓아 그런 걸까, 명확한 이유를 짚기는 아직 어려웠다. 신경 쓰던 촬영이 취소된 지난 주말, 애인과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맥주를 마시고 편의점 쇼핑을 했다. 눈독만 들이고 절대 집지 않았던 연세우유 크림빵을 손에 들고 집으로 와 '나 이제 모델한다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 안 받을 거야. 내가 좋아하는 작업만 골라서 할 거야. 그럴 수 있게 다른 일을 찾을 거야!' 큰소리치며 애인의 컵라면을 뺏어 먹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둔 크림빵을 꺼내 아침으로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여전히 운동을 하고, 여전히 촬영 제안이 들어오면 응하고, 여전히 식단관리를 하지만 마음이 한결 편하다. 먹고 싶은 것을 기꺼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식탐이 되려 줄기도 했다. 촬영이 끝난 날이면 보상심리로 먹게 되는 자극적인 음식이나, 지금 아니면 한동안 또 못 먹어, 라는 생각으로 하던 필요 이상의 군것질의 횟수 또한 현저히 줄었다. 


오늘은 출근 전에 짬을 내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온 포토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셨다. 다음에 할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히 사진을 찍었다. 좋아하는 사진의 결이 같은 친구와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올 수 있다는 것은 꽤 복되다. 돌아보면 모델 일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이 내 이십 대를 수놓았다. 친구에게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친구는 잘할 것 같다는 답을 건네 왔다. 원하는 곳으로 이직을 해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내 삶이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구나. 여전히 결이 맞는 친구들 곁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서로에게 주저 않고 응원과 애정을 건네며, 좋아하는 결의 대화를 하며 그렇게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자연히 통과했다. 그 여운으로 새 이력서를 채워 메일을 보내고, 글을 썼다. 적는 것만으로 해소되는 기분이 있었다. 오래 잊고 살았다 싶을 만큼 새삼스러웠다. 무력과 막연을 헤엄치다 오랜만에 땅에 손이 닿은 기분. 이 개운함으로 또 며칠을 살아내야지. 좋아하는 일을 놓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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