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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키치를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것. 어쩌면 진심만으로는 움직여지지 않는 것들. 연애관계에서의 키치는 아무래도 명확한 예시가 잘 떠오르기는 하네요. 이번에 당신이 드는 예시들을 보면서, 키치가 언어의 사회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언어의 의미가 한 줄기로 굳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동의와 약속이 필요하고 그것을 우리는 언어의 사회성이라 부릅니다. 키치도 비슷한 연유로 만들어진 형태라고 느꼈어요. 정말 마음이 동해서 그렇게 하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혹은 주변에서 다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관계에 아쉬운 쪽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것들. 우리가 말하는 ‘예의’도 키치와 같은 결에 있다고 느껴지네요. 어른의 집에 갈 때는 빈 손으로 가지 않는 일이나,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장소와 복장이 암묵적으로 정해지는 일같은 것도 다 키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랑에서 키치가 빠지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랑을 무엇으로 형체화하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본질(이 있다면)에 가까운 사랑만을 논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일상에서의 사랑이라면 어쩔 수 없이 ‘키치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것인 동시에 키치는, 누군가에겐 그런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바쁜 일이 있어도 시간을 쪼개어 서로의 얼굴을 보고, 기념일이면 조금 무리해서 더 좋은 곳에 가보고, 돈을 들여 반지를 맞추는 일은 키치다, 라고 명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텝니다. 마음은 동하지 않지만 연애관계에 있기 때문에 해야할 것 같아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일이 키치에 가까운 것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두 명의 연인이 기념일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와인을 마셨을 때, 둘 모두에게 그것이 키치일 수도, 한 사람에게는 사랑이 더 차오르는 장면이 되나 다른 한 사람에게는 키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 모두에게 근사한 사랑의 순간일 수도 있구요. 여기에서 지난 번 편지에서 이야기 한 사랑과 인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사랑에 힘이 붙는 순간은 그것이 사랑임을 인식할 때라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마음은 원하지 않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할 것 같아서 가는 기념일의 레스토랑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으로부터 탈피이자 관계에 붙여둔 중요성을 또 한 번 인식하는 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남들 다 하는 클리셰같은 일지라도 이 사람과 하는 연애는 처음이라서, 한 번씩은 같이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키치가 아닌 그저 사랑의 클리셰 중 하나이고, 사랑을 행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늘어놓은 말들이 당신이 말한 ‘그들이 진심일 수도 있다는 너무 당연해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비판’ 축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방금 막 들었습니다. 하지만 뭐, 짚어두어서 나쁠 것 없는 이야기란 생각도 드네요. 다시 한 번 그 일련의 연애 관계 속 행해지는 것들이 온전히 키치일 때만을 따져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키치는 겉치레만 서둘러 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가요. 사랑에서 키치가 완전히 빠지기엔 어렵겠다는 답은 여전히 같게 두겠습니다. 제가 믿고 싶어하고 앞으로 하고 싶고, 받고 싶은 사랑의 주된 모양과 키치는 확실히 거리감이 있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제가 제 연애 안에서 키치를 행한 적이 없다고 하는 건 확실히 거짓일 거예요. 실제로 지금 제가 하는 연애에 저는 만족을 하고 있고, 상대에 대한 애정 또한 편안하고 자연스레 들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이 같은 선상을 달리는 일이나, 동시에 절정에 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술을 마신 어느 날 밤, 술기운과 저에 대한 애정이 더해져 온갖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내었다고 생각해봅시다. 하지만 그 날의 제 주된 감정이 연락이 늦어진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 하루의 고됨 같은 것들이 뒤섞인 상태라면 저는 그 순간의 그말을 뱉은 상대를 그때의 상대만큼이나 사랑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 역시 사랑한다 답할 수 있을텝니다. 당장의 서운함보다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중심에 있다면 말이지요. 내가 사랑을 지속적인 행위로 가져가는 일과, 그 안에서 순간마다 변하는 관계며 상대에 대한 감정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어느 사랑에서 키치를 제할 수 있을까요. 키치는 감정에 사로잡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랑을 보다 더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키치를 행위함으로서 유지되는 관계들이 분명히 있을테구요. 이것이 제가 키치에서 언어의 사회성을 떠올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말했던 사랑보다도 그 사랑을 수식하는 말들이 더 중요해지는 일처럼, 키치 또한 사랑 그 자체일 수는 없어도 사랑을 그 본질에 가까워지게끔, 혹은 그 형태를 명확히 하게끔 돕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방식이 당신이 이야기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길 바라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